"쿠데타가 아닌 정치개혁 과정이다."
지난 2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들 앞에 선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은 당당했다. 사태 해결의 유일 통로로 불린 아세안이 그에게도 쉽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80여 일이 넘도록 군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니 아집이 아니라 나름 소신으로 보일 정도다.
자신감의 근원을 찾다보니 '미얀마 헌법'에 눈길이 갔다. "국가 위기 시, 군부는 대통령 재가 없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417ㆍ418조) 군부에 50년이 넘도록 탄압받은 나라의 헌법이 맞나, 눈을 의심했다. 보충 조항도 탄탄하다. 11명의 국가안보회의 구성원 중 6명을 최고사령관이 임명할 수 있어(210조) 행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어뒀다. 위기에 대한 정의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니, 굳이 탱크를 동원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조항들도 무소불위의 힘을 실어줬다. 군 통수권을 대통령이 아닌 최고사령관에 부여(20조)한 것도 모자라, 국방ㆍ내무(경찰)ㆍ국경부 장관은 처음부터 군부가 임명(232조)하도록 못 박았다. 비상사태 선포 후 군은 물론 경찰까지 시민 학살에 앞장선 배경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흘라잉 사령관은 투표로 비상사태 최고의결기구인 국가평의회 의장까지 됐다. 그가 국가수장이고, 아세안이 정상회의에 부를 근거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 시민들은 왜 헌법을 내버려뒀을까. 지금의 법적 틀이 만들어진 2008년 개헌 때 무슨 이유로 92%의 압도적 찬성표를 던졌을까. 전문가들은 "군부가 '다당제 도입'이란 희망을 전면에 내걸어 시민들이 독소조항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2015년 출범한 문민정부의 개헌 노력에 국민적 지지가 약했다는 점도 비극의 원인이다. 개헌을 정치적 레토릭으로만 생각했다는 뜻이다.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기구에 대한 참가 형식 또는 기준을 규정한 최고 법규.' 헌법의 사전적 정의가 유독 무겁게 다가온다. 개헌이 정권 유지 혹은 창출을 위해 쉽게 쓰여선 안 되는 이유를 미얀마는 처절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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