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4월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입력
2021.04.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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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변덕의 바람 작전

사이공 현지인 구출작전에 투입된 항공모함 미드웨이 선상의 베트남인들. midway.org

사이공 현지인 구출작전에 투입된 항공모함 미드웨이 선상의 베트남인들. midway.org

베트남전쟁의 패색이 뚜렷해진 1975년 4월 9일 미 백악관의 제럴드 포드가 주재한 국가안보위원회(NSC)는 그 전쟁의 마지막 작전인 '변덕의 바람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을 수립했다. 현지 미국인과 국제단체 인사 등의 구출·탈출 작전이었다. 미국인 주재원 가족 등 1순위자 20만 명을 포함, 현지인 협력자 등 대상자는 무려 160만 명에 달했다. 헬기와 수송기, 선박 등의 배치와 수용 인원 등에 대한 순차·세부 이행계획이 만들어졌다.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이 4월 30일 함락됐다.

가장 늦게 철수해야 할 현지 미 대사관에는 15쪽 분량의 비상 지침 팸플릿이 절대 외부에 유출돼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아 사전에 배포됐다. 현지 미군방송을 통해 소개령이 내려지면 첨부된 사이공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즉각 집결해 대기중인 헬기를 타라는 내용이었다.

북베트남인민해방군이 사이공을 포위한 것은 이틀 전인 4월 28일이었고, 현지 미국대사 그레이엄 마틴이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작전 개시를 요청한 것은 29일 오전 10시 48분이었다. 3분 뒤 작전이 시작됐다. 미군방송 진행자는 느닷없이 "현재 사이공 기온은 105도(화씨)이며 점차 오를 전망입니다. 이어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를 듣겠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노래를 내보냈다. 4월의 무더운 사이공에 난데없이 울려 퍼진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그 캐롤송은 미리 고지된 작전 사이렌이었다.

미국 시민들은 헬기 포인트로 이동했고, 대사관 직원들은 비밀문서 소각 등 철수 매뉴얼에 따른 마지막 임무를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대사관에 남은 그레이엄 마틴 대사가 헬기에 오른 것은 4월 30일 새벽 4시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후 남은 이들은 '보트피플'이 됐고, 그 숫자는 약 100만 명에 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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