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도덕적 토대

입력
2021.04.26 20:00
25면

편집자주

우리나라 대표 원로지성이자 지식인들의 사상가로 불리는 김우창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 우리 사회 각종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특유의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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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이야기이지만, 독일에서 연방정부 대통령이, 우리 기준으로 하면 극히 작은 수준의 뇌물이라고 하겠지만, 어떤 사업가로부터 해외 휴가여행 편의와 자금을 보조 받은 것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당사자가 부인에게, '그런 정도의 일은 한 1년 지나면 잊히고 말겠지'라고 말한 것이 흘러나온 일이 있었다. 대통령은 결국 사표를 내야 했다.

지금 우리 시국에서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화제가 된 사건 또는 스캔들은 대체로 1년이 아니라 금방 잊히고 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문제된 일들이 그렇게 큰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의 사회 사정 그리고 정치의 토대의 어딘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도 있다.

현재 사람들의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이다. 지난번 선거의 결과는 현 정부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을 저울질하게 한다. 청년층의 취업난도 사회 불안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여기에 보태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동산 가격의 불안정이다. 부동산의 문제는 현 정부가 바로잡아 보겠다고 관심을 쏟은 핵심적 과제이지만, 지금까지는 해결이 아니라 악화일로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여러 문제적인 사안 가운데 한 가지, 지난번 칼럼에서도 다룬 바 있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성격의 문제를 논의해보겠다. 거주가 공간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의 기초라고 할 때, 정부가 거주의 문제를 안정시키겠다고 나선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다만 그 정책이 거주 조건의 착잡한 내용을 충분히 깊이 있게 그리고 넓은 맥락 속에서 고려한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와 관련하여 그리고 오늘의 사회에서 일고 있는 여러 논쟁들과 관련하여, 그 밑바닥에 있는 문제 하나는 간단한 의미에서의 도덕적 불투명성이다. 부동산은 삶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커다란 돈벌이, 투기의 대상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정책을 담당하는 공직자들이 정책 시행의 배후에서 사익을 위하여 완전히 정책의 목표에 배치되는 일을 한 것이다. 여기에 드러나는 위선은 정부의 모든 정책에서 그 숨은 의도를 의심하게 한다. 나아가 그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공적 소통의 정직성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국가 정책을 생각하는 데에서 이성의 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상황을 바르게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데에는 사실 충실이 필수요건이다. 정직성이 없이는 국가적 담론이 상황의 바른 이해에 이를 수 없다.

지금 단계에서 한국이 당면한 과제의 하나는 사회의 도덕적 토대의 재건이다. 크게 보아 과제는 문화의 재구성이다. 도덕성은 개인의 인격 수양에서 나온다. 그러나 건전한 문화의 틀이 있다면, 그것은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사회적 품성이 된다.

오늘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논의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것은 정부가 드러내주는 너무나 자명한 도덕적 자가당착의 모습을 지적하는 논평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독일 대통령의 경우 공직자로서의 행동 규범 위반이 문제가 되었을 때, 들을 수 있었던 한 논의에서 대통령은 국민과 국가의 도덕적 규범의 기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우리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스며들어간 부도덕성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공적 담론의 기준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 현실의 바른 이해 그리고 그것을 위한 공적 담론의 윈칙을 삭제해버리는 일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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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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