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탄생 맞아 '영웅'의 의미를 생각한다

입력
2021.04.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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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최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기념다례. 현충사관리소 제공.

지난해 개최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기념다례. 현충사관리소 제공.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생 476년 기념일이다. 코로나 비상시국으로 인하여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충무공 탄생 기념행사가 개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이 충무공 정신을 기릴 것으로 짐작된다. 이 충무공이 시대를 넘어 우리 국민으로부터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량해전 이후부터 마지막 노량해전까지의 이 충무공의 삶은 공의 생애 중 가장 처절한 삶의 행적으로 꼽힌다. 이 충무공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날 조선 수군은 울돌목 해역에서 체류하지 못했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부하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사기를 올려야 할 시기에 조선 수군은 불가피하게 가슴 아픈 전략적 후퇴를 해야만 했다. 왜 수군은 비록 해전에서 패배를 했지만 수백 척의 적 전선이 여전히 명량해역 남단에서 진을 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왜 수군은 조선 수군이 떠난 후 전라우수영을 초토화시켰고, 전라도 연안 항·포구를 드나들며 인근의 백성들에게 분탕질을 서슴지 않았다. 울돌목 해역을 떠난 이순신 함대는 서해 오지의 섬과 바다를 오가며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왜적의 분탕질을 피해 바다로 피난한 백성들을 돌보기도 하고,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선창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아들의 소식을 듣고 밤새 통곡을 하며 피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 충무공은 조선 수군의 미래를 생각하며 조선 수군의 재건과 왜적을 몰아낼 생각만 하였다.

이순신 함대는 오지의 섬과 바다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낸 후 수군 부활의 거점지 목포 고하도로 상륙하였다. 이 충무공은 이듬해 고하도에서 완도 고금도로 이진하여 조선 수군 재건을 마무리하고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순국하였다. 우리가 이 충무공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이유는 그 분이 보여준 숭고한 희생정신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적과 전쟁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역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코로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42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은 죽기를 각오로 적과 싸워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적을 몰아냈다. 이순신 함대의 승리 뒤에는 늘 이 충무공과 함께 목숨을 담보로 함께 싸웠던 격군과 사부 등 조선 함대의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바이러스 전쟁터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 갑옷보다도 더 힘겨운 방역복을 입고 현장을 뛰는 사람들,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이 충무공 탄신일에는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뿐만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 수많은 오늘의 영웅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내면 좋을 듯하다. 하루 속히 코로나 전쟁이 종식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고광섭 국립목포해양대 해군사관학부 교수(예비역 해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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