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만 들쑤신 헛바퀴 '공공주도 공급대책'

입력
2021.04.26 16:00
수정
2021.04.26 16:2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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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부의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34곳)된 곳 가운데 가장 큰 역세권인 서울 동대문구 용두역 일대.

정부의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34곳)된 곳 가운데 가장 큰 역세권인 서울 동대문구 용두역 일대.


# 1. 역세권 사업 후보지-용두역 일대

“현금으로 청산될 수 있다고 알려줘도 빌라를 사겠다고 달려들어요. 공공주도 사업은 무산될 걸로 보고, 오세훈 시장이 규제를 풀어줘 민간 재개발로 가면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용두동의 한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

지난 20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주택가.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과 2호선 용두역 사이에 자리한 이곳 11만2,000㎡는 지금까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34곳)된 곳 가운데 가장 큰 역세권이다. 지난 2월 발표된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2·4 공급대책)에서 처음 나온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기존 민간사업으론 개발이 어려워 낙후된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를 공공이 주도해 지구 지정으로 부지를 확보한 뒤 용적률 상향과 신속 인허가로 사업성을 높인 공공개발이다. 오래전부터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다 2016년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된 용두동 일대를 역세권에 걸맞은 주거상업고밀지구로 개발, 총 3,2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게 국토부의 계획이다.

2·4 대책의 공급 부지확보 물량

2·4 대책의 공급 부지확보 물량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일부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막겠다”며 반발했다. 무엇보다 소유권이 사실상 수용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토지주가 소유권을 공공기관에 넘겨 신축 아파트 대금을 현물선납하는 방식이다. 주민 박영선씨는 “땅 주인 중 상당수가 평생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장사하며 어렵게 내 집을 마련한 어르신들인데 용적률 조금 올려준다고 선뜻 집문서를 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비리 등 공기업에 대한 불신도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두동 주민 박영선씨가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서울 용두동 주민 박영선씨가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후보지를 발표했지만 정작 이 일대에서 가장 노후도가 심하고 벌집촌을 연상시키는 용두3구역이 제외된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자투리 땅이 많아 사업성이 떨어지자 일부러 뺀 것 아니냐는 게 주민들의 의심이다. 주민 제용문씨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땅엔 65층(청량리역 롯데캐슬 SKY-L65)까지 허가해주면서 왜 우리 땅은 개발도 못 하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이처럼 주민 반대가 심해 사업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자 오히려 부동산 가격은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2·4 대책 발표 당시 투기 방지책으로 이날 이후 사업구역 내 기존 부동산을 신규 매입한 경우 우선공급권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토지주 3분의 2 이상 동의를 못 받으면 사업은 추진될 수 없다. 공공개발이 무산되면 결국 민간 재개발 사업으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입주권을 위해 이곳 빌라를 사 두려는 이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도 이런 기대감에 한몫했다. 규제가 풀리면 민간 재개발 사업성이 더 커지는 만큼 굳이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으로 갈 이유는 더 사라진다.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3월 거래 건수

실제로 빌라(다세대/연립) 거래는 2·4 대책 직후 잠시 줄어들다 다시 늘고 있다. 2월 서울 전체 빌라 거래는 4,41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으나, 3월에는 4,883건으로 1년 전보다 30%나 급증했다.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중곡아파트 전경.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중곡아파트 전경.


# 2. 공공재건축 후보지-중곡아파트

“전용 59㎡에서 44㎡로 집 크기가 줄어드는데 분담금은 1억8,000만 원이나 내야 한다면 과연 누가 공공재건축에 동의하겠는가.”

황보수문 중곡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장

1976년 전용 면적 48~61㎡ 276가구로 건설된 서울 광진구 중곡아파트는 국토교통부가 지난 7일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5곳)로 발표한 곳 중 하나다. 용적률 300%의 공공재건축 추진 시 370가구를 건립할 수 있어 민간 재건축 가구 수(296가구)보다 많은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20일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공공재건축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5층 건물 외벽 곳곳에 금이 가고 주차도 세 가구에 한 대꼴이어서 재건축 사업에 대한 주민들 열망은 컸지만 공공재건축에 대해선 불만이 많았다. 가장 큰 난관은 분담금이다. 용적률이 늘지만 기부 채납 임대 주택이 58가구나 돼 큰 수익이 안 된다는 게 조합 판단이다. 더구나 70%에 가까운 주민은 재건축 후 지금보다 더 좁거나 같은 크기의 집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도 분담금은 1억1,000만~3억 원(59㎡ 기준)을 내야 한다. 공공재건축보다는 1대1 재건축이나 민간 재건축으로 추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이 많다. 문병수 중곡아파트2단지 자치회장은 “LH의 심층 컨설팅 결과와 오세훈 시장의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을 지켜본 뒤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문병수(왼쪽) 중곡아파트2단지 자치회장과 황보수문 중곡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장.

문병수(왼쪽) 중곡아파트2단지 자치회장과 황보수문 중곡아파트 재건축조합 사무장.

문제는 공공재건축 추진에 가격만 급등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만 해도 3억 원대 초반(57㎡ 기준)이었던 아파트가 지난 2월 5억6,000만원에 실거래됐다. 최춘자 경안삼부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매물이 그림자도 못 볼 정도로 사라지고 전세도 2억 원대에서 3억원 대로 올랐다”며 “없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쉽다”고 말했다.

공공이 참여해 용적률을 올리고 가구수와 임대 주택을 늘리는 공공재건축은 정부가 지난해 8·4 대책을 통해 공개한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의 핵심이다. 그러나 중곡아파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가 없다. 정부는 공공재건축으로 2025년까지 총 5만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 5곳의 공급 물량은 모두 합해 2,200가구에 불과했다. 재건축 대장주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5단지 등도 모두 빠졌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영석교회에서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영석교회에서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 3. 공공재개발 후보지-흑석2구역

"용적률이 400%에서 600%로 올라갔고 층수도 35층에서 49층까지 지을 수 있는데 누가 반대하겠어요. 그런데 분양가가 걱정이네요."

흑석2구역 주민설명회 참석자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영석교회에서 열린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주민설명회. 지금까지 발표된 총 24곳의 공공재개발 후보지 중 최초로 사업 추진 방안을 담은 청사진이 나온 곳이다. 이날 두 차례로 나눠 열린 설명회에서 SH서울주택도시공사는 최고 49층, 용적률 600%, 1,324가구, 분양가 상한제 적용 제외 등의 구체적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파격적인 수준이다. 이진식 흑석2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설립 추진위원장도 “SH공사가 적극 나서 협의한 덕분에 당초 조건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환영했다.

지난해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5·6 대책)에 따른 '공공재개발'은 사업성 부족과 주민 갈등으로 장기간 정체된 재개발 사업에 공공이 시행자로 참여해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지난 1월 8곳의 시범사업 1차 후보지가 발표된 데 이어 3월 2차 후보지 16곳이 선정됐다. 공공재건축과 달리 공공재개발은 시장의 관심도 높다. 정부는 5·6 대책 당시 제시한 2022년까지 목표 물량 2만호를 이미 초과 달성했다.

서울 공공재개발·재건축 1차 후보지

서울 공공재개발·재건축 1차 후보지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 선정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 선정

그러나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고분양가 논란이 일고 있다. 설명회에 따르면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분양가는 3.3㎡당 4,224만 원(신축 시세 75% 기준)에 달할 전망이다. 이 경우 전용 59㎡의 분양가는 10억 원, 전용 84㎡는 13억 원대가 된다. 조합원 분양가도 59㎡가 8억 원대, 84㎡가 10억 원대에 달한다. 결국 공공재개발의 분양가가 민간 재개발 분양가보다도 높아지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공공재개발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특혜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주면서 사업의 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기대되나 공공성을 높여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공공재개발의 당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흑석2구역은 건축비도 3.3㎡당 650만 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18년 경력의 임계선 흑석아크로부자부동산 공인중개사는 “흑석동에선 2017년만 해도 1억 원만 있으면 세를 끼고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웃돈(P)만 11억 원이어서 손에 10억 원이 있어도 집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뜨거운 흑석동 일대 부동산 시장에 고분양가 공공재개발이 오히려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성명을 통해 “공공 재개발·재건축은 기존 토지주, 건설사, 투기세력에 돌아가던 이익을 LH 등 공공 기관이 누리기 위해 난개발을 조장하는 사업”이라며 “부동산 거품을 빼기는 커녕 집값만 폭등시키는 공공재개발·재건축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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