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무조건 친환경? "폐배터리 3년 뒤 1만 개 쏟아진다"

입력
2021.04.26 04:30
엔진의 종말, 전환의 과제
<상>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자

편집자주

현대차의 아이오닉5, 기아차의 EV6 출시로 우리나라에도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됐습니다. '전기차=친환경=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기차 시대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그 숙제를 <상> <하>에 두 차례로 나눠 짚어봅니다.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인천폐차사업소에 폐차를 기다리는 차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인천폐차사업소 제공

제주도 제주시 제주테크노파크 내에 위치한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연면적 2,458㎡ 건물에 길이 1, 2m짜리 전기차 폐배터리 약 163개(3월 말 기준)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전기차 폐차 후 폐배터리는 갈 곳이 없다. 이 폐배터리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연구하기 위해 도 차원에서 마련한, 일종의 보관창고다.

'친환경'을 내세운 제주도는 전기차 보급 속도가 국내서 가장 빠른 곳이다. 그만큼 폐배터리 처리 문제에도 가장 빨리 직면했다. 자체 연구 끝에 폐배터리를 가로등 에너지저장장치(ESS), 양식장 자동전원공급장치(UPS) 등으로 재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지만, 아직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제품은 전기생활용품안전법상 안전 인증이 필요한데, 도내에 시험 장비를 갖춘 인증 기관이 없다.

육지에서 부피가 큰 장비를 제주도로 들고 들어가기도, 반대로 섬에서 폐배터리 재사용 제품을 들고 나오기도 어렵다. 그러니 어렵사리 찾아낸 폐배터리 재사용 방안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 와중에도 폐배터리는 매주 평균 5개씩 창고로 들어오고 있다.

제주도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직원들이 입고된 폐배터리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도내에서 전기 제품을 시험 인증할 수 있게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같은 기관의 분소라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도 관계자는 "제주도의 전기차 폐배터리 문제는 지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안전 인증을 못해 내부용으로만 쓰고 있는 상황이니 폐배터리 산업이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전기차 넘어 전기차 생태계 만들어야

전기차가 내놓을 폐배터리 문제는 머지않아 전국에 닥칠 미래다. 친환경을 위해 전기차 보급을 독려하고 있는 정부가 지난 2월 내놓은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2020년 12월 말 기준) 13만5,000대(누적) 수준인 전기차는 2025년 113만 대로 8배나 늘어난다. 전기차가 이렇게 급속하게 늘어나면 '전기차 쓰레기'인 폐배터리 배출 속도도 빨라진다. 이대로라면 당장 3년 뒤엔 한 해에만 폐배터리가 1만 개 넘게 쏟아지지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 재사용·재활용 계획을 못 내놓고 있다.

박수한 전남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전기차만 도입한다고 친환경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며 "폐배터리 재활용 방법을 비롯, 수소 생산 방식이나 전기차 전환에 따른 전력량 증가 등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전환 속도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체의 생태계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2026년엔 폐배터리 10만 개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평균 7~10년.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2018년부터 폐배터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폐배터리는 전국 493개(누적) 수준이지만, 조만간 크게 불어날 예정이다. 환경부가 내놓은 추산만 봐도 폐배터리는 3년 뒤인 2024년 1만3,826개에 이어 2026년에는 4만2,092개가 쏟아진다. 이 때면 누적 폐배터리 수만 9만8,510개로 10만 개에 육박한다.

전기차 폐배터리는 다른 쓰레기처럼 매립이나 소각이 안 된다. 배터리에 들어 있는 리튬은 물이나 공기에 닿으면 급격히 반응하며 화재 발생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재사용·재활용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전기차엔 쓸 수 없더라도 배터리 자체의 성능은 60~70% 정도 남아 있다. 이 때문에 ESS나 충전주행거리가 짧은 농기계, 전기 자전거 등에 폐배터리를 다시 쓰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아예 폐배터리를 분해해 니켈, 코발트 등을 추출,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시각물_전기차 폐배터리 발생 전망 및 전기차-수소차 증가(누적) 추이


재사용·재활용 기술 없으니 그저 보관만

하지만 당장 폐배터리 거래 자체가 내년부터 가능해진다. 지금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정부가 지원해주니, 폐차할 때 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하도록 했다. 지자체도 배터리를 민간에 매각할 수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제주도처럼 창고에다 쌓아두는 수밖에 없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6월 전국 4곳에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가 완공된다"며 "여기에 폐배터리를 보관하면서 활용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30 무공해차 전환100' 제2차 선언식에서 한정애 환경부 장관과 참여 기업 관계자들이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술력도 부족하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지금 폐배터리 한 개의 잔존 성능을 측정하는데 10시간 정도 걸린다"며 "미국 연구 결과, 폐배터리 거래 시장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측정 시간을 20, 30분 내로 단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 배터리로 만든 ESS도 화재 등 안전 문제가 있는 만큼 폐배터리로 ESS를 만든다면 여러 번 다듬을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가 보기에 "그럼에도 정부는 늦장"이다. 인천의 한 폐차장 직원 박모(28)씨는 "그간 폐차 뒤 엔진을 분리해 중동이나 남미로 수출해왔는데, 이제는 엔진 대신 폐배터리 사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폐배터리 보관 사업이든 뭐든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정부는 아직 폐배터리 수가 많지 않아 급하지 않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의 전기가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면

이 때문에 '전기차=친환경'이란 공식이 성립하려면 단순히 전기차냐, 아니냐만 따질 게 아니라 자동차 전 생애에 걸친 친환경성을 따지는 '전 과정 분석(LCA·Life Cycle Assessment)'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솔린 디젤 차량이야 달리는 중에 배기가스가 얼마나 나오느냐 가지고 친환경성을 판단했다면, 이제는 연료부터 최종 폐기 과정까지 모든 단계에서 탄소 배출이 '제로'여야 진짜 친환경차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경기 안성 원곡면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서울 방향에 설치된 초고속 전기차 충전소가 전기차들로 가득 차 있다. 뉴스1

단적으로 전기차는 전기를 먹고 달린다. 이 전기를 생산하는 건 발전소들이다. 국내 발전량 중 가장 비중이 큰 건 석탄(35.6%·2020년)이다. 친환경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6.8%에 그친다. 당장 눈앞에서 석유를 안 쓴다 해서 '친환경차'라 하는 건 어쩌면 눈가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산업의 친환경성 평가 방식이 주행 중에만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 됐던 '연료탱크 투 휠(Tank-to-Wheel)'에서 '유정', 즉 연료 단계까지 따지는 '웰 투 휠(Well-to-Wheel)'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보급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노르웨이는 전기의 97%를 수력으로 만드니까 친환경적이지만, 한국은 석탄발전이 많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기차는 온실가스 제로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미 있었다. 2018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동차의 전력화 확산에 대비한 수송용 에너지 가격 및 세제 개편 방향 연구'에 따르면 전기차도 전 주기로 보면 충전용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에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전기차는 1㎞ 운행할 때마다 휘발유차의 53%, 경유차의 51%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나왔다.

특히 전기차가 배출하는 미세먼지(PM10)는 내연기관차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기차의 PM10은 휘발유차의 92.7%에 달했다. 전기차도 브레이크 패드나 타이어 마모에 따라 비산먼지를 양산했고, 전기를 생산하는 단계에서도 많은 미세먼지를 뿜어냈다.

수도권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이어진 2019년 3월, 서울 가양대교 부근 서울 방향 도로 알림판에 노후 경유차 단속과 운행 제한을 알리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연구 책임자인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도 상당한 간접 배출로 인해 대기환경보전법에서 정의하는 '제1종 저공해자동차'로 보기 어렵다"며 "전기차가 친환경차라고 말하려면 재생에너지를 어느 정도까지 늘릴 수 있는지, 우리가 그만큼 공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 늘면 전력생산 크게 늘려야

'도로 위의 공기청정기'라 불리는 수소차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수소의 대부분이 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그레이 수소', 즉 부생수소다. 이상적인 방법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만든 '그린 수소'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으로 실험 중인 기술로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다.

전기차가 대폭 늘어났을 때를 대비한 전력 수급 문제도 난제다. 전기차가 많아질수록 여름철 블랙아웃이 벌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급속충전기 한 대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5층짜리 건물에서 쓰는 전력량과 비슷하다"며 "지금보다 전기차가 30배 늘어나면 지금 생산되는 전력량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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