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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켤레 신발' 이멜다는 권좌 복귀를 노린다

입력
2021.04.24 10:30
수정
2021.04.2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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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이멜다 마르코스는 옛 영화를 그리워 하며 아들을 통한 권좌 복귀를 노린다. 왓챠 제공

이멜다 마르코스는 옛 영화를 그리워 하며 아들을 통한 권좌 복귀를 노린다. 왓챠 제공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왓챠 제공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왓챠 제공

페르난드 마르코스(1917~1989) 필리핀 전 대통령은 독재자였다. 21년 동안 국가원수로 있으며 권력을 맘대로 휘둘렀고 부정축재를 했다. 1972년 공산혁명을 막겠다며 선포한 계엄령을 9년 동안 유지하며 인권을 유린하기도 했다. 그의 부인 이멜다 역시 마닐라 시장으로 일하며 권력을 사유화했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하다고 하는데, 마르코스 대통령은 1986년 권좌에서 쫓겨난 후 하와이에서 숨졌다. 그의 가족들은 어떨까. 다큐멘터리 영화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감독 로린 그린필드)은 기막힌 현실을 보여준다.


①부활 노리는 이멜다

이멜다는 하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마르코스의 고향 북일노코에서 당선됐다. 북일노코는 마르코스 가족의 표밭이다. 큰딸 이미는 그곳에서 주지사이고, 외아들 봉봉은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멜다는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역부족이라 생각한다.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따로 뽑는다. 부통령 정도는 가능하다 생각해 2016년 선거에 입후보시킨다. 부통령을 하다 보면 대통령 될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다큐멘터리는 봉봉의 선거 운동과 이멜다의 회고를 병치시키며 엄혹했던 마르코스 시대를 돌아본다.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국가보다 고향, 국민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와, 칼라윗 섬에 만든 사파리다. 마르코스는 사랑의 징표로 영부인 고향에 대교를 지어줬다. 건설 지휘는 이멜다에게 맡겼다. 필리핀 어느 곳의 다리보다 많은 건축비가 들어갔다. 이멜다는 케냐에서 사들인 기린과 얼룩말들을 기르기 위해 칼라윗 섬에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연 동물원을 만들었다. 이멜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정성이 필요해요.”

이멜다 마르코스는 자신과 가족을 대상으로 이뤄진 여러 고소 고발에 대한 문건들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유죄 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왓챠 제공

이멜다 마르코스는 자신과 가족을 대상으로 이뤄진 여러 고소 고발에 대한 문건들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유죄 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왓챠 제공


②그들의 부는 누구 것인가

이멜다와 봉봉이 가는 곳엔 사람들이 몰린다. 경제가 발전하고 치안이 확립됐던 마르코스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멜다와 봉봉이 뿌리는 지폐를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많다. 이멜다는 집을 나설 때, 특히 고아원 같은 복지시설을 찾을 때 지폐다발을 꼼꼼히 챙긴다. 그는 돈을 뿌리면서 눈물도 함께 뿌린다. “(내가 권좌에 있다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아쉬움을 함께 토로한다. 이멜다는 눈물 많고 인정 많은 ‘사랑의 영부인’이 맞는 것일까.

이멜다는 망명 전 필리핀 대통령 거처 말라카냥궁에 명품 신발 3,000 켤레를 남겨놓고 가 화제가 됐다. 해외 비밀 계좌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숨겨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거주하는 마닐라 아파트에는 피카소와 미켈란 젤로, 모네 그림까지 걸려있다. 권력을 이용해 축적한, 부정한 재화다. 그는 필리핀 국민으로부터 훔친 돈 중 극히 일부를 선심 쓰듯 나눠 주면서 인기 관리를 한다.

이멜다는 계엄령 시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정당 활동이 정지되고, 3,2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는 9년을 필리핀에서 “정의와 인권, 자유가 가장 넘쳤다”고 기억한다.

이멜다 마르코스가 2016년 장남 봉봉의 부통령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왓챠 제공

이멜다 마르코스가 2016년 장남 봉봉의 부통령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왓챠 제공


③어쩔 수 없는 민주주의 아이러니

마르코스 가족이 권좌 복귀를 노릴 수 있는 건 민주주의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종종 독재자와 독재자 가족에게 관대하다. 국가를 통치하던 시절 쌓은 부는 거대하고, 인적 관계망은 막강하다. 마르코스가 쫓겨난 지 30년이 됐어도 위세는 여전하다. 문제는 그 권력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서 다시 권좌에 앉을 수 있다는 거다. 계엄령 시절 핍박 받았던 어떤 인권운동가는 이렇게 말한다. “재력을 가지면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 쉽다.” 이멜다와 자식들이 지닌 재력은 필리핀 국민에게서 나온 거다. 그래도 많은 국민은 이멜다와 봉봉을 지지한다. 민주주의의 아이러니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민주화 뒤에는 반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최근 미얀마에서 발생한 쿠데타 역시 그렇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은 민주주의의 허약한 체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민 혁명이 성공했다고 해도 사회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독재자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아시아에서 민주국가를 자부하는 한국이라고 해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칼라윗 섬은 이멜다가 쫓겨난 후 원주민들이 돌아왔으나 동물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근친교배로 기린은 살이 쉬 문드러지고, 목이 짧아지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인다. 끼리끼리 권력의 교배가 국가를 어떻게 망치는지를 은유한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97%, 관객 90%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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