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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도입하겠다" 20년째 반복되는 '지키지 않을' 약속들

입력
2021.04.24 20:00
수정
2021.12.08 14:01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주년]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로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보장하라" 투쟁 시작
정부, 2007년부터 교통편의증진계획 발표
저상버스 도입 약속은 한 번도 지킨 적 없어
수도권 지하철 승강기 설치 92%는 고무적

2002년 9월 11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인 장애인이 끌어내는 경찰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9월 11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1호선 시청역 선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인 장애인이 끌어내는 경찰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1년 설 연휴 전날이었던 1월 22일. 전남 순천에서 역귀성한 70대 부부는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를 타고 경기 시흥시 오이도역 지상 역사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막내 아들집에서 머문 뒤 큰아들네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이동 중이었죠. 할머니는 지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었습니다.

부부가 역사에 도착하기도 전, 리프트를 지탱하던 두께 1㎝의 쇠줄이 끊어졌고, 두 사람은 7m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할머니는 치료 도중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해당 리프트는 설치한 지 고작 6개월 된 새 기계였습니다.

이른바 '오이도역 추락 참사'로 불리는 그날의 사고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발단이 됩니다. "왜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가." 1999년 6월 서울 성북구 혜화역 추락사고, 같은 해 10월 강동구 천호역 사고 등 이전에도 숱한 사고를 경험했던 장애인들은 분노하며 거리로 모였습니다.

장애인이동권쟁취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신) 회원들이 2003년 1월 22일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 2주기를 맞아 승강장과 차량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애인이동권쟁취연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신) 회원들이 2003년 1월 22일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승강장에서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고 2주기를 맞아 승강장과 차량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장애인들은 "리프트 사고를 한 업체의 기술 문제나 관리 소홀 문제로만 몰아가지 말라"며 교통 약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도록 방치한 정부 당국의 무책임을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 교통수단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도 요구했죠.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동권 투쟁은 마침표를 찍지 못했습니다. 눈에 띄게 개선된 점도 있지만,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변화가 더딘 것들이 더 많습니다.

'불법 시민'이라는 낙인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숱하게 막아세웠지만, 휠체어 군단은 지금도 '메아리 없는 구호만 남기고 밀려나기'(본보 2001년 9월 18일 자) 일쑤입니다.

변한 것: 수도권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

영화 '버스를 타자'(2002) 중에서

휠체어에 탄 A가 지하철 역사 내 계단 앞에서 멈춰선다.
그가 벽에 부착된 버튼을 누르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리프트가 내려오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던 한 남성이 리프트를 흘깃 쳐다본다.

리프트에 오른 A가 두리번 거리고 있다.
-행인: 도와드릴까요?
-A: 예 이것(안전바)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행인: 어떤 거... 이거요?
-A: 예
-행인: (안전바를 내리며) 이렇게 내리면 되는 건가요?
-A: 예, 고맙습니다.

행인이 떠나고 A를 태운 리프트는 다시 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른다.
약 3분간 요란한 소리가 지속된다.



물론 긍정적 변화도 있었습니다. 올해 4월 기준 수도권 지하철 역사의 92.2%(283곳 중 261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는 것은 교통약자들이 대합실을 거쳐 지하철 승강장까지 타인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체계(1역사 1동선)가 구축된다는 의미입니다. 2001년 당시 설치율은 13.74%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지하철 1~8호선 엘리베이터 설치율. 서울교통공사

서울지하철 1~8호선 엘리베이터 설치율. 서울교통공사

나머지 22곳도 엘리베이터 신설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19일 자료를 내고 "6곳은 설치 공사 중이고, 12곳은 설계 단계"라며 확충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년 내내 이동권 투쟁의 선봉에 섰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수도권은 이미 지어진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한 공사를 따로 해야 해서 1역사 1동선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그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지키지 않은 약속①: 2004년까지 승강기 100% 설치

영화 '버스를 타자'(2002) 중에서

2001년 7월 30일 서울시 보건복지국 면담

-문영모 당시 장애인복지과장: 이렇게 나서시니까 아휴 우리가 서울시가 못하는 구나. 그래서 높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니 기분이 확 빠지더라고. 그러니 우리 장애인 편의시설 그냥 열의를 좀 줄이자. 뭐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물론 이거는 마음으로만 그랬습니다마는.
-박경석: 과장님은 100원을 갖다가 100원 내에서 어떻게 요리할 건가에 대한 문제나 기술적인 문제를 고민할 거 아닙니까? 장애인의 70.5%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집에만 20년, 30년 쳐 박혀 있는 이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라는 것으로는 도저히 안된다는 거예요. 실무자의 열심히 노력하는 문제하고 이 나라의 정책이 바뀌는 문제는 다른 문제예요.
-문영모: (중략) 현실에 맞게 체계를 바꿔야 할 거 아닙니까?
-활동가 A: 자 보십시오. 제가 30살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서른 살이 넘어서 나왔습니다. 어렵게. 그런데 그 이유가 다 현실이 안좋으니까. 지금 현실이 안좋은데 현실을 그냥 인정해라. 인정하라고만 자꾸 강조를 하는데 저희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다간 모든 인생이 끝나 버릴텐데요.

그러나 이동권 투쟁이 미완으로 남은 것은 긍정적 변화보단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 및 리프트가 장착된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또 다른 무고한 죽음과 이에 분노한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싸움이 있었습니다.

오이도역 참사 1년 뒤인 2002년 6월 서울 강서구 5호선 발산역에서 또다시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장애인들은 목에 사다리를 끼우고, 쇠사슬로 휠체어를 감싼 채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습니다. 서울시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 39일 동안 단식 투쟁도 이어갔죠.

약속은 그렇게 받아낸 겁니다.

발산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 참사 서울시 공개 사과 촉구를 위한 무기한 농성 단식 15일째를 맏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 연대회원들이 2002년 8월 26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발산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 참사 서울시 공개 사과 촉구를 위한 무기한 농성 단식 15일째를 맏은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 연대회원들이 2002년 8월 26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2005년 5월 서울시는 46곳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19곳은 구조물 문제, 13곳은 보도폭 협소, 11곳은 승강장폭 협소, 3곳은 민원 및 도시계획 사업 보류를 이유로 들었죠.

엘리베이터 규격을 조정하고, 설치 위치를 바꾸거나 대지를 구입하고,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지만 시는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2008년 경기 수원시 1호선 화서역에서, 2017년 서울 영등포구 1, 5호선 신길역에서 또다시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수도권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 일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수도권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 일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키지 않은 약속②: 저상버스 도입

영화 '버스를 타자'(2002) 중에서

2001년 11월 21일 저상버스 시승식

탑승전 발언
-활동가 A: 예산과 또 정부의 도로, 우리나라의 도로 타령만 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나마 저상버스를 타보는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기만 합니다.

스스로 버스에 타는 장애인 활동가들
-활동가B: (웃으며) 좋아요. 일단 편리하구요. 시간이 짧게 걸리니까 너무 편리하고. 좀 더 안정적인 것 같고 좋아요. 맨날 네 명이서 들고 나르다가 그냥 스르륵 밀고 들어오니까 기분이 더 이상한 거 있죠!

-활동가C: 저상버스 도입이 어렵다고 할 때 정부에서 얘기하는 게 두 가지예요. 도로 여건이 저상버스가 다닐 여건이 안된다. 또 하나는 예산이 부족하다라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게 얘기를 들어왔고.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에서 강북 2권역에서 새롭게 여섯 대 저상버스를 돌린다고 합니다. 자 그러면 강북 2권역에 있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니는 도로는 서울시에서 유별나게 저상버스가 다닐 수 있는 환경으로 골라 놓은 곳만 다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도로 환경이 저상버스가 다닐 수 없다는 것은 허구다.
두 번째로 예산 문제를 얘기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전체 예산 중에서 장애인 복지 예산이 1%가 채 안돼요. 자 그러면 1% 채 안되는 돈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이렇게 돈이 없다"고 얘기를 하면은 저는 그것이 충분히 서구 유럽처럼 15%, 25%는 안바라더라도 최소한 어떤 장애인의 뭐, 삶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만 있다라면, 그 이상의 어떤 무엇을 해야될 것인가가 보일 것이고, 그 속에서 예산이 만들어질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2004년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사에서 뜻깊은 해입니다. 그해 연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돼 이동권 개념이 처음 법에 명시됐기 때문입니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2007년부터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도 수립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저상버스 도입이 문제였습니다. 1차 계획에선 '2011년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31.5%를 저상버스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2011년 말 시내 저상버스 도입률은 12%였습니다. 2차 계획에서는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41.5%에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달성률은 19%였죠.

집을 나선 지 30분 만에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또다시 25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저상버스. 그러나 휠체어를 위한 슬라이드 안전발판이 고장 나 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집을 나선 지 30분 만에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또다시 25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저상버스. 그러나 휠체어를 위한 슬라이드 안전발판이 고장 나 있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상버스 도입이 20년째 공회전하는 까닭은 ①민간사업자의 기피, ②지방자치단체의 발 빼기, ③정부의 방관이라는 '문제적 3종세트' 때문입니다.

일반 버스의 구입비가 대당 1억2,000만 원이라 가정하면, 저상버스는 그 두 배인 2억2,000만 원입니다. 이 때문에 민간 버스사업자는 전환 비용 및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며 저상버스 도입을 피합니다.

그 차액을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버스사업자에 지원하기로 했지만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은 '예산 부족' 핑계로 발을 뺍니다.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 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교통약자법에는 '노선 버스의 이용 보장(제14조)' 조항이 있지만 저상버스 도입을 강제하진 않습니다.

박 대표는 "'노선의 굴곡이 심해 저상버스 도입이 힘들다'는 변명도 20년째 단골로 나오는 멘트"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20년이 지났으면 어느 노선이 어떻게 불편하기 때문에 이건 어떻게 고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하는데 한결같이 추상적으로 불가능하다고만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2014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시외버스 탑승 시위를 벌인 장애인들에게 경찰이 최루액을 쏘는 모습. 뉴시스

2014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시외버스 탑승 시위를 벌인 장애인들에게 경찰이 최루액을 쏘는 모습. 뉴시스

그는 "수도권은 지하철로 대체하면 된다고 해도, 비수도권은 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라 정말 처참한 수준이다"라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2019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도입률은 20% 미만인 곳이 4곳(울산 12.2%, 경기 13.6%, 전남 13.6%, 경북 15.2%)이고, 충남은 시내 저상버스가 9.3%에 불과합니다.

시내버스는 도입이라도 되고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그리고 마을버스는 20년째 저상버스 도입률이 0%입니다. 정부는 2019년 고속 저상버스 시범운행을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가겠다"고 했지만 2년이 다 되도록 후속 조치는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①: 예산 타령, 불복종 투쟁을 보는 시선

영화 '버스를 타자'(2002) 중에서

지하철에 탄 시민들이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지하철 안내방송
-장애인 여러분의 집단 승하차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 늦어져서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손님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행정당국의 '예산 부족' 타령도 20년째 그대로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5년 '서울시 장애인이동권선언'을 발표하며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전장연에 따르면, 올해 공사를 추진할 역사에 들어갈 예산은 서울시 본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의식한 듯 서울교통공사는 19일 낸 보도자료에 "1역사 1동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재정난으로 예산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지난 2월 9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 완전 이행을 촉구하며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부터 서울역까지 '지하철 타기 1차 직접행동'에 참가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난 2월 9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선언 완전 이행을 촉구하며 서울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부터 서울역까지 '지하철 타기 1차 직접행동'에 참가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버스 타기 운동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변하지 않긴 마찬가지입니다.

1월 22일 오이도역 참사 20주기를 맞아 오이도역에서 서울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투쟁을 할 때였습니다. 휠체어 하차로 시간이 정체되자, 일부 시민들이 "병신이 벼슬이냐", "어차피 더 이상 다칠 데도 없는 사람이잖아요"라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박 대표는 그러나 "사람들 인식의 변화는 제도가 주도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년 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서명을 받았을 때 '이동권이 아저씨 이름이에요?'라고 묻는 어린이가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병신들의 투쟁'으로 2003년 '장애인 이동권'이 국어사전에 처음 실리고, 교통약자법도 생긴 지금은 이동권을 기본권으로 인식하지 않냐"고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②: 2021년 구호도 "버스를 타자!"

박경석(맨 오른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차별버스 저지' 투쟁을 벌이다 버스기사의 항의를 받고 있다. 박경석 대표 제공

박경석(맨 오른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차별버스 저지' 투쟁을 벌이다 버스기사의 항의를 받고 있다. 박경석 대표 제공

2021년에도 장애인들은 '지하철·버스를 탈 권리'를 외치며 거리로 나갑니다.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저상버스만 요구한다"는 주장에,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타지 않나"라고 되받아치는 건 2001년과 같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행정 당국의 공허한 약속도 하나씩 늘어만 갑니다. '올해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3차 교통약자 편의증진 계획도 달성하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까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26.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서울시장애인이동권선언'에서 "2024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노선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2019년까지의 도입률(53.9%)을 볼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장애인들은 20년째 거북이걸음인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해서 교통약자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개정안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내버스를 대·폐차할 때 무조건 저상버스로 바꾸도록 의무화하는 것입니다. 이동 시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 비수도권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취지입니다.

②또 하나는 특별교통수단 운영의 지역 간 차별을 없애기 위해 중앙정부의 지원을 확대하고, 도(道) 단위의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하자는 것입니다. 특별교통수단은 리프트를 장착한 택시나 승합차로 현재 각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교통수단 역시 그 수가 부족합니다. 국토부는 2016년 법정 차량 수(당시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 2019년부터는 150명당 1대) 대비 실 운영 차량 비율이 100%가 넘는다며 초과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65세 이상 노인 등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다른 교통약자들도 특별교통수단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 자유로운 이용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재정자립도나 정책에 따라 서비스질 차이도 큽니다. 어떤 곳은 24시간 운행하지만, 또 다른 곳은 하루 10시간만 운영하죠. 장거리 이동 시 다른 지자체로 넘어갈 때마다 차량을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2002)의 스틸컷.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다룬 영화 '버스를 타자'(2002)의 스틸컷.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동권은 한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근간입니다. 박 대표는 "이동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 속에서 교육이 이뤄지고, 탈(脫) 시설과 자립이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국가 스스로 세운 계획조차 번번이 지키지 못하는 국가를 보며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그는 "같은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사람이 있고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며 "이동권 같은 기본권의 문제를 다룰 때는 제발 예산 타령 같은 뻔한 레퍼토리는 그만두고 불가능한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봐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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