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신화와 현실

입력
2021.04.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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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윤석열의 진심' '구수한 윤석열' 등 윤 전 검찰총장 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정작 윤씨는 자신을 다룬 책이 잇달아 출간되는데 대해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뉴스1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윤석열의 진심' '구수한 윤석열' 등 윤 전 검찰총장 관련 서적이 진열돼 있다. 정작 윤씨는 자신을 다룬 책이 잇달아 출간되는데 대해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뉴스1

신화는 사실과 허구 사이에 걸쳐 있는 일종의 믿음체계다. 고난이 가득한 현실에 대한 민중의 염오와, 다른 세상에 대한 강렬한 바람이 환각 같은 이야기를 형성한다. 인류 역사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구세주 강림 테마와 그걸 뒷받침하는 수많은 신화들에도 시간을 관통하는 민중의 염원이 반영된다. 그런 맥락에서 물 위를 걷고,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한 예수의 신화는 모두 굳건한 진실이 된다.

▦ 민중의 염원이 반영되는 믿음체계라는 점에서, '신화 현상'은 현실 정치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민중의 염원이 정치인 주변에 모여 신화가 생성되고, 신화는 그 정치인의 가치를 보강하는 ‘피드백 효과’를 낸다. 그저 그런 ‘보수꼴통’으로 전락했을 수도 있는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런데 독일의 위협 앞에 지리멸렬한 내각에 대한 불만과 국가적 긍지 회복에 대한 영국 국민의 열망이 그에게 결집됐고, 거기에 부응함으로써 처칠에겐 ‘불굴의 지도자’라는 신화가 구축됐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인기가 치솟으면서 그 주변에서도 신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교 동창 저널리스트 이경욱씨가 쓴 ‘윤석열의 진심’(체리M&B)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이 회고하고 방송작가 김연우씨가 정리한 ‘구수한 윤석열’(리딩라이프북스) 등 인간 윤석열을 조명한다며 잇달아 나오는 책들이 대표적이다. 정작 윤씨는 섣불리 자신을 미화하는 이런 책들에 대해 “내 동의 없이 자꾸 책이 나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하지만 질이야 어떻든, 책이 그려내는 그의 신화적 모습엔 지금 국민이 바라는 차기 지도자상이 투영됐을 것이다. 정의를 뒤떠드는 자들보다 믿음직한 평범한 양심, 혹세무민하며 나라 말아먹는 자들과 비교되는 담백함, 무리한 파격보다 상식과 원칙을 잊지 않는 묵직한 현실주의 같은 게 그런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 그게 대통령감을 담보할 순 결코 없다. 그가 진정 뭔가 해보겠다면, 신화보다는 치열한 현실 이슈들에서 ‘강골검사’ 이상의 지도자적 역량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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