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군대 가라" 남녀평등복무제를 말하기 전에

입력
2021.04.22 14:25
<15> 이용석 '평화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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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정치권에서 촉발된 남녀평등복무제 이슈가 달아오르고 있다. '평화는 처음이라'의 저자 '전쟁 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여자도 군대 가라"는 단편적 반응을 넘어 평화 담론까지 아우른 군 개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진은 2012년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명칭 변경)에서 열린 '임관종합평가'에서 학사 및 여군 사관후보생들이 전술이동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용진의 정치혁명'. 정치인 박용진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하며 던진 ‘출사표’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에 그의 정치 비전이 정리되어 있다. 그중 딱 세 페이지를 할애한 병역제도 개혁안이 화제다.

내용은 현행의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고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인터뷰까지 종합해보자면, 이를 기반으로 2,000만 예비군을 양성하면서 15~20만 소수정예강군을 편성하고 군인들에게 대기업에 준하는 연봉을 주자는 그림이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이 내용이 화제가 되자 21일 찬반 의견을 방송했다. 여기서 ‘자주국방네트워크’의 신인균 대표는 모병제에는 반대하지만 여성징집에는 찬성이라고 말했다. “군내에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병과들이 많다. 예를 들어 최근 동해에서 경계를 잘못 서서 뚫리지 않았는가? 그런 CCTV 경계병, 정훈, 군수지원, 이런 분야(...). 창끝에서 전투를 하는 전투부대는 50%뿐이다. 나머지는 여성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촉발된 남녀평등복무제 이슈가 달아오르고 있다. '평화는 처음이라'의 저자 '전쟁 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여자도 군대 가라"는 단편적 반응을 넘어 평화 담론까지 아우른 군 개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강조한다. 2017년 충분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 하계입영훈련에 입소한 학군사관후보생(ROTC)이 기본전투에 앞서 위장 크림을 바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랜 시간 군복무 여부를 이유로 차별당해 온 여성들 중에는 “차라리 군대에 다녀오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신 대표의 말이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남성은 전투에 능하지만 여성은 돌봄과 관리에 능하다는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여성 복무가 논의된다면 상황은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스웨덴의 경우 여성이 군복무를 해서 성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남녀 성비가 과도하게 불균형한 마지막 분야가 군대였기 때문에 여성 징집이 시작됐다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이어서 '전쟁 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는 우선 남녀평등복무제 논의가 나오게 된 현실 정치의 맥락을 짚었다. 보궐 선거 후 20대 남성 표심 잡기에 몰두하는 정치권에서 다시 등장한 “여자도 군대 가라”는 식의 논의라면, 휘발성 높은 이슈로 소비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병역제도를 비롯한 군 개혁을 말하기 위해서는 안보의 의미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 활동가의 책 '평화는 처음이라'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다. 국가가 아무리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 지구적 감염병이나 기후위기, 쓰나미와 같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안보의 성격은 한국전쟁 직후와는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한국군은 여전히 그 과거를 표준으로 삼으면서 군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평화는 처음이라·이용석 지음·빨간소금 발행·198쪽·1만2,000원

이런 내용을 들으면서 군 기득권을 대변하는 신 대표의 마지막 발언이 떠올랐다. “진보 정치인이 안보에 신경을 쓰는 부분이 매우 고무적이다.” 결국 ①시대에 맞추어 안보의 의미를 재규정하고 ②방산과 연결되어 있는 군 부패를 척결하고 군 개혁을 진행하며 ③군대 내 인권문제를 제고함과 동시에 ④궁극적으로 군축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남자사병’을 갈아넣어 억지로 유지하는 군사주의를 지속하는 논의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이 문제의식들은 모두 '평화는 처음이라'에서 친절하게 다루고 있다.

박용진 의원이 던진 화두는 의미가 있다. 모병제건 성평등을 위한 군제도 개혁이건 더 활발히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여자도 군대 가라”에서 맴돌지 않으려면 군사주의 문화부터 제대로 질문해야 한다.

이번에는 한국사회가 군 개혁 논의를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평화 담론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평화는 처음이라'에서 이 활동가는 이렇게 썼다. “평범한 사람들은 핵폭탄 단추도, 선전포고나 파병을 결정할 권한도 없지만, 전쟁을 막고 중단시키는 힘은 오히려 시민들에게서 나옵니다.” 큰 울림이 있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른 누구들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믿는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바로 본다,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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