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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코인이 '짠한' 이유

입력
2021.04.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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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도지코인 로고. AP 연합뉴스

도지코인 로고. AP 연합뉴스

‘사랑의 고백’이란 꽃말을 가진 튤립의 원래 고향은 터키 등 서아시아다. 유럽으로 전해진 건 16세기 말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찾은 외교관들 공이 크다. 튤립은 당시 무역 중심지 네덜란드로 넘어간 뒤 다양한 색상의 품종으로 개발되며 부유층에 큰 인기를 끌었다. 아름답고 특별한 희귀종 튤립이 돈이 되자 네덜란드 서민들은 너도나도 튤립을 심었다. 400종도 넘는 품종이 개발되고 수요도 커지며 1636년 ‘황제’라는 튤립 알뿌리 가격은 3,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폭탄 돌리기는 1년 후 가격 폭락으로 귀결됐다.

□ 2013년 인터넷에 일본 개인 시바견을 소재로 한 영상과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이를 마스코트로 가상화폐를 만들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이렇게 개발된 게 바로 개(dog)에 알파벳 ‘e’를 붙인 도지코인이다. 갑자기 유명해진 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트위터에 언급한 뒤다. 팔로어가 5,100만 명도 넘는 거물의 투자는 광풍을 불렀다. 1년 전 0.002달러였던 도지코인은 최근 0.41달러까지 폭등하며 시총이 500억 달러가 넘는 등 시세가 요동치고 있다.

□ 도지코인 등 가상자산(암호화폐) 열기는 튤립 파동과 닮았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독립 전쟁에서 이겨 돈이 넘쳤다. 투자를 안 하면 바보로 취급받던 시대, 사람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식은 비싸다며 튤립을 매수했다. 집을 살 수 없자 코인 투자에 나선 한국 2030과 유사하다. 흑사병이 돌아 네덜란드 인구 8분의 1이 숨지면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이 커진 것도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다를 게 없다.

□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막대한 달러와 유동성을 찍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정책 실패까지 겹치며 아파트값이 더 올랐다.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건 불가능한 시대, 화폐의 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든든한 배경도 없는 2030이 그나마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코인 투자란 분석도 나온다. 기성 세대 잘못이 큰 이런 미친 세상에서 2030만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할 순 없다. 투자는 본래 자기 책임이다. 그래도 역사를 돌아보는 신중한 판단은 필요하다. 튤립의 또 다른 꽃말은 '경솔'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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