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락사, 지금 같은 외상센터가 있었다면

입력
2021.04.27 21:00
<9> 허윤정 외상외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삐삐삐삐-“

“공사장 9미터 추락 환자이고 의식 없습니다.”

“인투베이션(기관삽관) 해! 혈압 50 저거 맞아?”

“펄스(맥박) 약합니다. 어레스트(심정지) 날 것 같습니다.”

“삐삐삐-“

“엑스레이 왜 안 와, 골반 완전히 무너졌잖아!”

“대량 수혈 액티베이션(활성화) 하겠습니다.”

“체스트 튜브(흉관)도 준비해주세요.”

의식이 없는 추락 환자가 실려 오자 외상센터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 모든 장기에 손상 가능성이 있다. 운 좋게 타박상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된다.

이때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손상은 뇌출혈이다. 골반이나 척추, 늑골 골절에 의한 동맥성 출혈, 복강 내 장기 파열에 따른 혈 복강… 모두 수 분, 수 시간 내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진단명들이다. 그러나 일단 환자가 살아서 외상센터까지 이송되었다면 그것만으로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그럴 기회조차 없이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적합한 시설과 의료진이 갖춰지지 않은 병원으로 잘못 이송되는 환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외상센터 도착 후 중증 외상 환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이제 의료진이다. 길게 고민을 하거나 괴로워할 여유는 없다. 시간이 없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내게는 추락 환자를 마주할 때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좋은 친구이자, 어드바이저이자, 반짝이는 사람이었다.

2009년 여름 처음 만난 그는 음악을 사랑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20대 청년이었다. 남의 말을 항상 귀 기울여 들어주던 그의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가득했다. 내가 바보 같은 연애 상담을 요청할 때도, 유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워하던 때도 그는 언제나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주곤 했다.

그는 유독 형을 잘 따랐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모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어둠이 짙어진 때 높은 곳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 높이와 공기, 바람, 그리고 별. 그가 사랑했던 것들이리라.

“너 자신의 가치를 항상 기억해.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며칠 전만 해도 나의 용기를 북돋워주었던 그를 갑작스레 만난 곳은 장례식장이었다. 그는 온데간데없었고 한 장의 사진이 되어 꽃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그날 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올라 다이시 댄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잠시 중심을 잃었을 것이다. 사고 후 구급대는 즉시 그를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이송했고, 의료진은 가능한 모든 치료를 퍼부었다. 그러나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내 그는 가슴과 목에 여러 개의 관이 꽂힌 채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았다. 가족 중 일부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를 보내는 마지막 길에 친구들은 다함께 목놓아 그가 가장 즐겨 듣던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그는 나무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당시는 외상센터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중증외상 치료는 시스템이 곧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외상센터 응급실에는 언제라도 중증 외상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전용 침대가 있어야 하고, 3명 이상의 외상 의학 전문의가 24시간 대기해야만 한다. 또한 외상 전용 수술실도 항시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시스템을 갖추고 미리 준비된 외상센터만이 골든아워 내에 중증 외상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지역의 모든 구조 인력과 중소병원들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환자가 제때 실려 와야 살리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외상센터만 잘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0여 년 전 사력을 다해 그를 치료했던 의료진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중증 외상 환자를 살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병원으로 그를 실어 간 구급대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다만 그가 지금의 시스템이 갖춰진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잘 훈련된 중증 외상팀이 그를 맡았더라면, 10여 년 전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 그 일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계속 우리 곁에서 반짝일 수 있었을까? 내가 그의 담당의였다면, 나의 알량한 실력으로 과연 그를 살릴 수 있었을까? 의미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매일 외상센터로 들어오는 수많은 환자들도 결국은 또 다른 ‘그’이리라. 모두가 모두에게 소중하고 또 모든 것이다. 보물 같은 나의 가족, 친구, 동료가 생의 끝자락을 향할 때 그 마지막 1분 1초 만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똑같다.

그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정진하고 앞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해야 단 한 명의 그라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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