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과 클로이 자오, 두 아시아 여성의 오스카 드라마 펼쳐질까

입력
2021.04.21 12:00
25일 개최 2021 아카데미 시상식 관전포인트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왼쪽)과 영화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중국 출신의 클로이 자오 감독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여기엔 아시안 혐오 분위기에 대한 '아카데미식 답변'이 작용하리라는 기대도 깔려있다. 윤여정과 클로이 자오 감독이 지난 4일 제27회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과 11일 제74회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SAG·BAFTA 제공


2021 아카데미는 기록의 향연

25일(한국시간 26일 아침)에 열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미 여러 기록을 갖고 있다. 우선, 23개 부문 후보 중 76명이 여성이다. 100% 흑인이 제작한 작품이 처음으로 작품상 후보가 되었고, 복수의 여성이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 스티븐 연이 남우주연상 후보로 호명된 것도 처음이다. 바이올라 데이비스는 흑인 여배우 중 최초로 오스카 후보로 네 번째 지명되었고, 베이징 출신의 중국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는 여성 최초로 주요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 작품이 35개 부문에나 후보로 지명된 것도 그 기록 중 하나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 벌써 화제가 되고 있는 아카데미 진기록은 다양성으로 수렴된다. 다인종, 여성, 무슬림 등등. 미국이야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도가니가 아닌가 싶지만 그만큼 갈등과 차별이 깔려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무슬림이 주연이든, 아시아인이 감독을 했든, 흑인이 제작을 했든 간에 아카데미 후보가 된 작품들이 거의 다 미국 작품이다. 미국의 자본으로 제작되고, 미국의 배급망을 타고 유통된 말 그대로 로컬 영화, 미국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서 당한 곤욕을 생각해보면, 미국 영화가 매우 편협한 권력 구조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지 동양인이 주인공이고 낯선 비영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영화가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한인 이민 가정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미국 자본으로 제작·배급된 영화임에도 비영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탈락돼 주최 측을 향해 비난이 일었다. 골든글로브 페이스북


기록의 이면 #아카데미소화이트

93회 아카데미 후보작의 신기록 이면엔 사실 아카데미의 고질적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카데미소화이트(AcademySoWhite)’ 논쟁이다. 2015년과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녀 주·조연 후보 부문을 모두 백인이 차지하자, 스파이크 리 감독을 비롯한 아프리칸 아메리카 영화인들이 해시태그 운동을 벌인 게 그 시초다.

당시 그 해 중요한 영화로 거론되던 마틴 루서 킹 소재 영화 '셀마'가 그 어떤 부문에도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미국의 많은 영화인은 아카데미의 편향성과 보수성을 비판하며, 그것이 비단 한두 해의 경향이 아닌 아카데미의 속성임을 지적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2017년 아카데미는 성적 소수자이자 흑인의 이야기인 '문라이트'에 작품상을 수여했다. 백인, 다수 중심의 아카데미 이미지를 한 번에 씻어 내고자 했던 일종의 기획이라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문제는 시상식 과정에서 수상작을 잘못 발표하는 엄청난 실수가 있었고, 사실상 이 실수가 그 해 아카데미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흑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문라이트'에 작품상을 수여했으나 시상식에서 봉투가 뒤바뀌어 수상작이 잘못 호명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말하던 영화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비츠(왼쪽)가 봉투를 내보이며 수상작을 정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더 뉴요커'의 지아 톨렌티노는 진보적인 척하는 어색한 정치적 풍경이라며 “아카데미 쇼”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 번의 수상이나 반짝 기획으로 90년이 넘도록 켜켜이 쌓였던 차별과 편견의 역사를 지울 수 없다는 따끔한 비판이었던 셈이다.

변화는 아카데미 구성원의 변화와 확장으로 시도되었다. 여성, 아시아계 아카데미 회원을 대폭 늘림으로써 양적 다양화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박찬욱, 이창동 감독, 이병헌 배우 등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된 것도 이 시기다. 양적 변화가 절실했던 게, 2012년 아카데미 회원의 94%가 백인, 77%가 남성이었으며 평균 나이는 62세나 되었다고 한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다년간 변화를 시도한 끝에 2018년 여성 회원의 수는 5% 상승해 28%에 이르렀고, 소수인종 회원은 13%가 되었다. 그나마 이는 2015년 이후 359%나 증가한 숫자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런 노력의 결실처럼 비친다. 한국 자본, 한국 감독, 한국 배우의 한국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4개 부문을 휩쓸었으니 말이다. 전략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미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기생충'을 중심에 초대한 것은 너무 하얗고 보수적이라고 비판을 받아 왔던 아카데미가 그 비난을 한 번에 불식시킬 만한 결정적 선택이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극우주의와 백인 저소득층을 겨냥한 대중독재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평가도 있다. 아카데미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에 늘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기생충'은 로컬 영화상, 아카데미가 변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알리바이가 되어 준 것이다.

'기생충' 이후 '미나리'의 차별성

'미나리'는 얼핏 '기생충'이 놓인 상황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상 매우 다르다. 일단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비록, 한국어가 다수 사용됐다고 하더라도, 주된 배경이 미국이고 미국 이민사가 영화의 내용이다.

'기생충'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 상징적 우화라면 '미나리'는 미국의 한 부분을 비추는 사실주의 영화다. '기생충'이 우리의 삶의 단면이라면 '미나리'는 철저히 미국 역사를 다루는, 미국 영화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연의 남우주연상 후보 진출은 무척 의미가 깊다. 아시아인 특히 동아시아 출신의 배우가 미국의 영화, 드라마 시장에서 주연을 맡은 경우는 거의 없다. 비중있는 역할을 맡는 경우도 드물다. 미국의 총인구 중 5.7%가 아시아인이지만 미국 영화 출연진 중 아시아인은 3.7%에 불과하다.

영화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왼쪽)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스티븐 연이나 윤여정은 할리우드에서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소비됐던 기존 아시아 배우들과는 다르다는 평가다. A24제공

스티븐 연이나 윤여정의 노미네이트는 일찌감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영화 '사요나라'(1957년)의 여배우 미요시 우메키와 대조해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미요시 우메키는 패전한 일본에 머무는 미국인의 동거인으로 그려진다. 조연이라곤 하지만 영화 속 배치된 미장센으로 소모될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동양, 오리엔탈리즘의 극치가 바로 '사요나라'다.

그런 점에서, 여우조연상 후보가 된 윤여정은 완전히 다르다. 윤여정은 한국어로 한국의 할머니를 연기한다. 미국인에게 보이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할머니일 뿐이다. 굳이 미국 관객을 의식하지 않았기에 더 신선했다.

'미나리'는 30여 년 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명에 인생을 투자한 한 젊은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다. 사실, 그 이민자들이야말로 미국의 뿌리다. 트럼프 집권 이후 가속화된 극우주의와 다인종 문화에 대한 강화된 차별은 미국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그런 점에서 코로나 이후 거침없이 확산된 아시아계 증오 범죄에 대한 조용한 반성도 자극한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위협받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나라”가 바로 미국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기획에서 보자면, 제93회 아카데미의 스포트라이트는 중국 여성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몫이 될 확률이 높다. 저소득, 고연령, 여성 노동자를 다룬 '노매드랜드'는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해 미국 내 다양한 영화상에서 이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다시피했다. 거기에 중국이 클로이 자오를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정치적 스캔들도 매혹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아시아계 여성 감독이라는 점이 아카데미의 고질적 문제점이었던 보수성과 편협성에 대한 대안이자 야만적인 아시안 증오 범죄에 대한 아카데미식 답변으로 선택될 여지가 있다. 이런 여러 이슈는 '노매드랜드'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제93회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될 확률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언제나 드라마를 원한다. 지난해 자막 영화라 투표권자들이 보지도 않는다던 '기생충'의 이변도 그 드라마 중 하나였다. '골드더비'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은 윤여정의 수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각본상이나 감독상의 가능성도 열어 두고 싶다. 만약 아카데미에서 기분 좋은 이변과 놀라운 반전이 있다면 바로 '미나리'의 활약이 되지 않을까? 아카데미에서 수상 소감을 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미국인, 그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무대도 드물 테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5년 신춘문예로 데뷔했고, 고려대에서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와 문학에 관련된 글을 쓰고 미디어 비평 등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지은 책으로 '영화글쓰기강의', '스무살영화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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