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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가르쳐도 더 잘 배우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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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여전히 캠퍼스에 발도 딛지 못하고 있는 20·21학번들을 온라인 강의실에서 만날 때는 마음이 애잔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신성적과 수능 예상문제와 씨름해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희망보다 걱정이 많은 대학생들을 바라보면 더욱 마음이 아리다. 남들보다 더 좋은 학점을 받고 스펙을 하나라도 더 쌓으려 노력하는 이들의 눈에 45%의 20대 청년실업률, 4년 새 평균 56% 오른 서울 아파트 시세, 2년 연속 출산율 최하위 국가의 현실은 어떻게 비춰질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뛰어가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과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분노가 화학 작용해 표출된 것이 지난 4월 7일 보궐선거의 20대 표심이었다.
또 한 번의 선거는 끝났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도 차분하게 자신이 뛰어가는 방향과 방법을 돌아봐야 할 때다. 동시에 대학도 벚꽃 지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현실에 넋 놓을 때가 아니고, 꿈을 잃어 가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구체적인 희망으로 다가설지 고민해야 한다.
대학은 지식을 만들어 내고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 지식이라는 것이 항상 그 모습 그대로 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대학 아브스만 교수는 '지식의 반감기(2013)'에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물리학 지식이 반토막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3.1년이라고 봤다. 경제학의 지식 반감기는 9.4년, 수학은 9.2년, 종교학은 8.8년, 심리학과 역사학은 7.1년이라고 한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열심히 가르친 지식 중 절반이 졸업 후 불과 몇 년 안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면, 우리는 대학 교육의 현실적 효용성에 심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은 다음 세대가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일을 자유롭게 연습하는 지식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10% 덜 가르치고 그 시간에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주자는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최근 제의에 크게 동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과 교수,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이런 시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려니 하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데 말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960년대 중반 스탠퍼드 공대의 젊은 교수 몇몇이 모여서 최고의 공학자들이 내놓은 연구성과가 왜 사회에 크게 필요하지 않은 지식의 수준에 머무는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이러한 공과대학 콤플렉스 한가운데 만들어진 것이 스탠퍼드 디자인스쿨이다. 이곳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함께 모여 생각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체험하고 실행한다. 아무리 독창적이려고 노력해도 한 사람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공감하기를 배우고, 협업을 통한 문제 해결과 실천의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실패를 전제로 한 실험정신을 배운다. 여기에서 나온 모토가 디자인스쿨 로비에 크게 걸려 있다. “성공도 실패도 없다. 단지 도전만이 있다.”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생각과 창의성의 실천적 훈련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 테크산업을 견인했다.
덜 가르치고 더 잘 배우게 하는 것이 스마트한 대학교육이다. 구글과 유튜브에 가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다. 그러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고, 생각하고, 만들고, 실패하면 또다시 도전하면서 부단히 생각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배움과 실천의 놀이터는 유튜브가 제공할 수 없다. 대학이 마음먹고 노력하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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