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2030은 뭐 해주면 좋아한다? 거대 양당, 그만 얕봐라"

입력
2021.04.24 14:00
수정
2021.04.2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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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 공약에 싸운 커플들…페미 열기 느껴"?
"기본소득, 꼭 차기 대선 주요 의제로 만들 것"
"허경영, 1% 득표 14년 걸려…진보진영의 과제"

청년 여성 정치인에게 듣는다
<1>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편집자주

"청년 남성은 반(反)페미니즘이다? 틀렸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2030'과 '페미니즘' 논쟁이 뜨거운 요즘, 신지혜·신지예 두 청년 여성 정치인이 여론과 다른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달군 청년·젠더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두 사람의 인터뷰로 담았습니다. 기본소득과 기후 위기 등 미래 담론에 대한 두 사람의 분석도 전합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거대 양당은 2030세대를 뭔가 해주면 좋아하는 세대라며 아래로 보고 있다. 이들이 왜 분노하는지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른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거대 양당이 2030세대의 분노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 대표는 선거 기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이 2030세대를 대하는 태도는 그저 어린아이를 내려보는 수준에 그쳤다고 혹평했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공정과 불평등인데, 이를 해소할 해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신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미프진(경구 낙태약)'을 선거 현수막에 쓴 유일무이한 후보였다. 미프진과 무상 생리대를 책임지겠다고 공약해 20대 여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미프진 공약 피켓을 든 선거운동원 앞에서 미프진 논쟁을 벌인 커플도 제법 있었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또 선거 기간 노숙인들이 많이 늘어난 걸 보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난지원금이 불러일으킨 기본소득 논란에 대해선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의 주요 의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쟤 페미야' 수근대자 당당히 '네, 저 페미예요'라고 했다"

4·7 재·보궐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6일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선거는 페미니즘을 내건 여러 젊은 여성 후보들이 출마해 주목받았다. 신 대표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반감을 모두 느꼈다고 했다.

자신에게 "쟤 페미야", "페미 지나간다" 등 조롱하는 유권자도 있었지만, 열렬히 환호해 준 청년 유권자도 많았다고 한다. 신 대표는 자신에게 '페미다'라고 한 유권자를 향해 "저 페미 맞아요"라고 당당히 인사했다. 이럴수록 자기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더 당당히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공약 중 무상 생리대와 미프진 도입이 주목받았다.

"이번 선거를 뛰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차가 크다는 걸 느꼈다. 무상 생리대와 미프진 도입 공약은 20대 여성들이 많이 공감해 줬다.

선거 공약을 두고 싸운 커플이 있었다. 한 커플이 미프진 도입 피켓을 들고 있는 선거운동원을 보고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남성은 '저런 걸 왜 하느냐'고 했고, 여성은 '매우 필요한 공약'이라고 했다. 이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커플은 언쟁을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내건 후보가 가장 많이 출마한 선거였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후보들이 욕을 먹더라도 '나는 페미니스트"라며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출마해 준 덕분이다. 주변에서 페미니스트를 향한 공격이 늘어 걱정을 많이 해줬지만, 그럴수록 여성들을 많은 페미니스트이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

3월 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 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3월 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당 창당 모임과 정치하는엄마들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증가한 20대 여성 자살률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기간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유권자가 많았나.

"그렇다. 선거 운동원들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제가 겪은 일화 중 선거 유세를 하는데 제 뒤를 지나가는 한 분이 친구들한테 '쟤 페미잖아, 페미'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가 뒤를 돌아보고 '네 맞아요. 저 페미예요'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그분이 '죄송하다'며 지나갔는데, 왜 죄송하다고 하셨는지 궁금했다. 그분과 대화를 더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거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직접 느꼈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나.

"캠프에 여성 청년 운동원이 많았는데 폭력이 일어날 때 어떻게 대응할지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선거 운동을 하다 보면 젊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분이 너무 많다. 한 시민은 교통에 방해가 된다며 여성 선거원의 뺨을 툭툭 쳤다. 이 일을 당한 선거원은 트라우마를 겪었고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선거에 임하기 전 '평등문화 약속문'을 썼다. 선거보다 당신이 더 소중하니 폭력에 참지 말고 선거 운동을 바로 멈추고 고민하기로 했다."

"2030男 '페미니즘 절대 안 돼' 아냐…女와 함께 갈 수 있어"

방송3사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세대별 득표율

방송3사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세대별 득표율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2030세대 남성과 여성의 엇갈린 표심이다.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의 15%는 군소 후보에게 투표했다. 반면 2030세대 남성의 약 70%는 오세훈 시장에게 투표했다. 일부에선 2030세대 여성은 페미니즘을 지지한 반면, 남성은 반(反)페미니즘 투표 성향을 보였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신 대표는 잘못된 분석이라고 반박했다. 동시에 거대 양당이 2030세대를 너무 얕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대 여성과 남성의 표심이 많이 달랐다. 이를 어떻게 분석하나.

"20대 여성은 내 삶을 바꾸는 어젠다에 표를 줬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논란이었고, n번방 가해자가 재판받는 상황이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묻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반면 20대 남성은 자신들의 삶을 얘기하는 후보를 찾지 못해 정권 심판 투표를 했다고 생각한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거대 양당이 20대 남성을 잡으려 여성 친화 정책에 소홀한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오히려 성평등 정책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거 기간 만난 2030세대 남성들을 보면 '페미니즘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여성들처럼 내 삶에 절실한 부분이 아닐 뿐, 페미니즘에 대해선 공감하는 편이다. 2030세대 남성들이 지금보다 더 내 일처럼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성평등은 당신을 해치는 게 아니다', '성평등이 되면 우리 모두에게 좋다'는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성평등이 되면 불평등 문제가 해소된다는 걸 설득하면 된다."

-거대 양당이 2030세대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나.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이 집권여당에 대한 분노가 깊습니다'란 메시지 외에 무엇을 보여줬나. 또 민주당은 청년들을 위해 데이터·교통요금을 대폭 깎아주겠다고 했다. 두 정당은 청년들의 분노 포인트를 잘못 짚고 있다. 2030세대를 너무 얕보고 있다. 이들을 뭔가 해 주면 좋아하는 사람들로, 시민을 아래로 보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 공감 늘고 있다…특정 정치인 이슈로 봐선 안 돼"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강북구 마포구 미아사거리역에서 기본소득당 신지혜 서울시장 후보가 출근길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1일 오후 서울 강북구 마포구 미아사거리역에서 기본소득당 신지혜 서울시장 후보가 출근길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기간 초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정(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기본소득 논란이 불거졌다. 여권 주요 인사들이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일단락됐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신 대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하며, 차기 대선 때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이 기본소득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다고 느꼈나.

"이제 제대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공감해 준 시민이 많았다. 그런데 선거 기간 곳곳을 다니면서 안타까운 장면을 많이 봤다. 지하철역 주변 노숙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쉼터가 문을 닫으면서 지하철역 쓰레기통을 뒤지는 분을 여럿 봤다. 어렵게 코로나19 위기를 버티는 분들을 위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서둘러 지급해야 한다. 그것도 여러 차례."

-기본소득이 내년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가 될 수 있을까.

"민주당 안에서 기본소득을 특정 정치인의 의제로 여기는 분위기라 걱정이다. 기본소득 자체에 대해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이 편견 없이 바라보도록 잘 설명하는 게 당면한 과제다.

대선은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얘기하는 자리다.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리셋할지 보여주는 게 대선의 역할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꼭 대선 의제로 올려야 한다."

"1% 득표 14년 걸린 허경영, 진보진영 고민 깊게 할 때"

김예원 녹색당 공동대표(왼쪽부터),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 여영국 정의당 대표,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송명숙 진보당 서울시장 후보가 2일 국회에서 4·7 재보선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김예원 녹색당 공동대표(왼쪽부터),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 여영국 정의당 대표,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송명숙 진보당 서울시장 후보가 2일 국회에서 4·7 재보선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뉴시스

신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0.48%의 득표율을 얻었다. 신 대표를 포함해 젠더와 인권 이슈를 내세운 진보진영 인사 5명의 득표율(1.91%)은 2%도 안 됐다.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을 두고 진보진영의 위기란 평가가 나왔다.

신 대표는 선거 결과에 대해 진보진영이 앞으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해 나가고 버텨야 할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의 연대도 논의할 시기라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3위를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표가 차지했다.

"허경영은 온 국민이 아는 스타다. 선거에서 인지도가 참 중요하다. 그런데 허 대표가 정치를 해 온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 이후 허 대표가 득표율 1%를 얻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다. 대안 정치를 꿈꾸는 진보 진영이 14년을 어떻게 버티며 국민을 설득할지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기다."

-진보 진영의 현실적 고민이란 무엇을 말하는 건가.

"투표일을 앞두고 기본소득당과 정의당을 포함한 군소정당이 '반기득권 공동정치선언'을 했다. 우리가 얘기한 부동산과 기후, 젠더, 불평등 문제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구체적 합의가 필요하다. 반기득권 연대는 내용이 없다면 공허한 프레임이다. 구체적 의제 설정을 위한 치열한 논의와 공동 협력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의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성소수자 문제였다.

"선거 기간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고민을 함께하는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했다. 청소년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차별금지법 제정 전이라도 사망 관련 통계에서 성소수자 항목을 넣는다면 성소수자들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큰 위협을 당하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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