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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은 왜 더 우울증에 많이 걸릴까... 사회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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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이 정신적 고통을 더 많이 안고 살아가는가? 성별이 정신건강을 온전히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성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고 남성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 만한 고학력 전문직 여성이 가난한 실업자 남성보다 고통스럽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과 경험은 성별(젠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정신건강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통계로 드러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지난해 101만7,000명에 달했는데 여성이 67만1,000명으로 남성(34만5,000명)보다 2배 많았다.
이러한 건강상태의 집단적 차이는 남녀의 기질 차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병원 방문 비율로도 설명이 어렵다. 집단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따라서 건강 상태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많이 축적돼 있다. 예컨대 고소득자보다는 저소득자가 흡연, 음주에 빠지거나 건강이 나빠지기 쉽다. 노동환경만 따져도 두 집단의 처우가 얼마나 다른지 누구나 안다.
실제로 성별 건강 격차를 생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증거는 많다. 당장 평균수명만 따져도 산업화 이전까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짧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살게 된 것은 그 이후다.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우울증 역시 마찬가지다.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이 정신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치더라도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스트레스에 영향을 미치는 점은 명백하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우울증을 유별나게 많이 앓는다면 환경에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여성끼리도 집단마다 정신질환 유병률이 다르다. 산후우울증의 경우, 집 밖에서 오래 생활하는 직장여성보다 전업주부가 더 많이 앓는다.
여성 신체의 변화가 우울증을 부른다는 주장도 사회적 맥락에서 따져볼 점이 있다. 폐경기(완경기)를 일찍 경험한 여성일수록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고 이는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우울함이 호르몬 부족 때문인지 사회가 강조하는 ‘여성성’을 잃었기 때문인지, 늙었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회는 출산과 첫 경험에는 큰 관심을 갖지만 완경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마찬가지다.
많은 여성은 완경기 동안 예전의 자아가 죽어간다고 느낀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고 느낄 정도로 강렬한 열감이 찾아온다. 한편으로는 질이 위축되고 피부는 주름지며 골다공증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남성들은 자신의 신체 역시 늙는다는 점은 회피한 채 배우자에게서 성욕이 사라졌다고 좌절하기도 한다. 완경기 여성이 여성호르몬을 맞지 않는다면 남편들이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이처럼 신체 변화에 대한 두려움 역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완경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한 작가 다시 스타인키는 “완경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완경이라는 현상을 가부장제 아래서 경험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거칠게 설명하면 한국 사회는 남성보다 여성의 우울증 발병 스위치를 더 많이 누르고 있다.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여성의 우울 수준이 남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이는 한두 자료에서 보이는 결과가 아니며 매우 일관되게, 모든 자료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성을 우울하게 만들까? 지면에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지만 여성에게 더 많이 지워진 가사노동과 양육 부담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특히 일하는 여성은 가정과 직장 양쪽에서 압박을 받는다. 청년 여성의 상황은 또 다르다. 이들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지만 취업시장에서는 남성보다 선택지가 좁다. 많은 직장이 여성을 뽑기를 주저한다. 여성이 임신하고 육아휴직이라도 신청하면 회사가 입는 ‘손해’가 얼마인가? 이런 사회적 환경이 중첩돼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리는 이유가 환경에 있다는 점을 이해한 사회는 다른 집단이 왜 우울한지도 살펴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이민자, 성소수자, 학교 밖 청소년… 한국 사회가 ‘사회적 약자’의 우울증 스위치를 얼마나 많이 누르는지, 어떻게 누르는지 알아차릴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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