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2개월 여아 뇌출혈,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았다"

입력
2021.04.15 11:35
수정
2021.04.1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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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재형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격정 토로
갑자기 체포된 엄마,?"화가 나서 던졌다"는 아빠
"당국, 여건 어려웠다 해도 보호 위한 노력 부족"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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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인천 부평구 한 모텔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생후 2개월 여아 중상해 사건은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아빠의 아동학대로 인해 일어났다. 경찰에 따르면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를 받고 있는 아빠는 조사 과정에서 "아이가 울어 화가 나서 던졌다"며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주변 사정을 보면, 이 사건은 ①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상황 ②지난주 있었던 갑작스런 엄마의 구속 ③관계 당국의 시스템 미비와 결과적으로 부족했던 대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TBS 라디오 '이승원의 명랑시사'에 출연한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사정을 지목하면서, 관계자들이 아이 보호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뻔히 막을 수 있는 걸 막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세 가지 감정'이 든다"면서 ①아동학대 행위를 한 20대 아빠에 대한 분노 ②국가 기관의 늦은 대응에 대한 아쉬움과 책임감 ③태어난 지 2개월 된 여아를 데리고 있는 엄마를 구속한 사법 당국에 대한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2개월 여아 엄마를 꼭 구속해야 했나"

13일 생후 2개월 여아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인천시 부평구 한 모텔의 객실 모습. 사건 발생 전 여아의 일가족은 함께 모텔에 머물고 있었다. 인천=연합뉴스

13일 생후 2개월 여아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인천시 부평구 한 모텔의 객실 모습. 사건 발생 전 여아의 일가족은 함께 모텔에 머물고 있었다. 인천=연합뉴스

우선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 가족은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거주하다 보증금 문제로 집 주인과 마찰을 빚고 여러 모텔을 전전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6일, 두 아이의 엄마가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이날 같은 방송에 출연한 인천 남동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행정복지센터 직원과 경찰이 이 가족이 머무르는 모텔을 방문해 아동의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수배 대상임이 확인돼 그 자리에서 체포됐고 사기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

승 연구위원은 "다른 혐의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사기 혐의가 임대차 관계에서 전세, 월세 대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왔다는 것"이라면서 "도망의 우려가 있더라도 아이와 엄마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구속을 시키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두 아이 보호를 최우선으로 했어야"

지난달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주최로 양천 경찰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주최로 양천 경찰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문제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당국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구속된 뒤 아빠는 아이들을 두 명 다 기르기 힘들다며 가정 위탁을 신청했다.

하지만 통상 위탁 가정을 찾는 데는 한 달가량이 걸리기 때문에, 아빠는 이를 취소하고 행정복지센터와 협의해 양육시설을 찾다 임시로 24시간 어린이집 입소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남동구청 관계자는 "사건이 발생한 당일 부친과 동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나 모든 행정 절차를 추진하려는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승 연구위원은 "두 달 된 아이가 모텔에 있을 때 이 상황을 공무원들이 인지하고 있었으면, 이는 가장 먼저,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런 상황에서 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는 쉼터나 보육시설이 극히 부족하다는 사정도 지적했다. 그는 "두 살 된 첫째 아이도 건강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경우는 치료도 가능한 종합 시설로 가야 하기 때문에 가정위탁을 취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아동학대 사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서 "저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라며 책임감을 토로했다. 그는 국무조정실 아동정책조정위원을 맡고 있다.


"아무리 육아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어른들은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라고 쓰인 대구 중구 삼덕동의 한 담벼락 앞을 행인이 지나고 있다. 대구=뉴시스

"어른들은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다"라고 쓰인 대구 중구 삼덕동의 한 담벼락 앞을 행인이 지나고 있다. 대구=뉴시스

승 연구위원은 이런 여건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아이들 아빠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아동학대 중상해죄로 범죄 혐의를 살펴보고 있으면 폭행으로 인해서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가했다는 구성 요건이 성립된다는 뜻"이라면서 "친부가 정말 아이에게 이런 폭행을 했다면 그 부분은 용서받을 수 없는 부분이고, 아무리 친부가 육아 스트레스가 있다 해도 부모가 아이를 지켜줘야 되는 것"이라고 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를 받고 있는 아빠는 당초 "딸을 안고 있다가 실수로 벽에 부딪혔다"며 아동학대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이후 "(딸이 자꾸 울어) 화가 나서 던졌다"고 혐의를 일부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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