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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연루설" 풍문 전하자… '김학의 임명 배후설'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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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과거사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왜곡·과장 논란은 '윤중천 면담보고서'뿐 아니라 '박관천 면담보고서'에서도 엿보인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A4용지 8쪽 분량의 '박관천 면담보고서'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8팀 소속인 이규원 검사와 A검사, 그리고 파견 수사관 B씨가 2019년 2월 12일 서울 마포의 호텔 콘퍼런스룸에서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을 만난 뒤 각자 기재한 메모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엔 박 전 행정관 요청으로 녹취는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면담보고서엔 수사권고 및 언론보도의 근거가 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경찰 수사외압 의혹과 최서원(최순실) 배후설이 언급돼 있다. △박 전 행정관 경력 △청와대 근무 시 김학의 성접대 의혹 사건을 조사한 이유 △박 전 행정관이 보고했던 김학의 사건 내용 △성접대 의혹에도 김 전 차관이 임명된 이유 △김학의에 대한 경찰 수사항목으로 나뉘어 있고, 문답이 아닌 요약 형태로 작성됐다.
면담보고서 요지는 2013년 초 경찰 내사 착수 전부터 '김학의 별장 성접대 영상'이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고, '야당 국회의원과 언론에 해당 영상이 전파됐으며 경찰도 영상을 확보했다'는 취지다. 자신이 청와대에 수차례 보고했는데도 김 전 차관이 임명돼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제는 박 전 행정관이 면담 과정에서 '전언'과 '추측'을 자주 말했고, 진상조사단은 이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김 전 차관에 대한 경찰 수사를 막으려 했다'는 부분에선 "곽상도 민정수석이 보고 없이 수사를 시작했다고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을 전화로 질책했고, 그날 (민정수석실 소속) C사무관이 나에게 수사국장 휴대폰 번호를 물어보길래 알려줬고, 수사국장이 나한테 전화를 해 민정수석이 난리가 났는데 청와대 분위기는 어떤지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고 적혀 있다. 민정수석이 경찰 수사 책임자를 질책했다는 내용으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가 2019년 3월 곽상도 민정수석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 권고할 때 근거가 됐던 진술이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당시 면담 참석자가 작성한 초안을 확인한 결과, 곽 당시 수석이 김학배 수사국장을 질책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고 '당시 수사국장이 외압의 실체를 잘 알 텐데 제가 말씀드리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박 전 행정관 발언만 있었다. 박 전 행정관은 면담 과정에서도 "경찰에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제가 말하긴 부적절하다"며 다른 경찰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라고 수차례 답변을 떠넘겼다. 그러나 박 전 행정관이 언급한 경찰 관계자 대부분은 조사단에서 외압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 전 행정관은 수사의뢰 후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진상조사단 면담 때 외압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들 역시 "청와대 관계자 등 외부로부터 질책이나 부당한 요구, 지시, 간섭 등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면서 민정수석실이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국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수사를 못하도록 경찰에 외압을 가했다'는 취지의 '각색된 면담 내용 한 줄'이 수사권고의 근거였던 셈이다.
이른바 '최순실 배후설'과 관련해 박관천 면담보고서에 나오는 문구는 "김학의를 낙점해 관철시킨 것은 최순실이다" "김학의 아내가 활동적이고 평판이 좋은 사람으로 최순실과 연결돼 각별했던 것으로 안다" 등이다. 이런 내용은 당시 '김학의 아내와 최순실 사이의 친분이 김 전 차관 임명 배경'이라는 취지의 언론보도로 이어졌고, 2019년 5월 법무부 과거사위 최종 결과 발표 때는 '김 전 차관 임명 강행에 석연치 않은 의혹이 있다'는 암시적 표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면담 참석자가 작성한 초안을 분석해 보니, 박 전 행정관은 김학의 전 차관 임명 배경과 관련해 '시간대별로 인사 검증을 따라가보면 되지 않겠나. 위에서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를 뭉갰지만 물증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규원 검사가 갑자기 '최순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냐'고 여러 차례 먼저 물었다. 박 전 행정관이 "모르겠다"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면서 "상상에 맡기겠다. 김학의 아내와 최순실이 관련 있다는 말은 있었다"는 식으로만 답했다. 결국 '최순실 배후설'에 대한 집요한 추궁에도 박 전 행정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음에도, 면담보고서에는 신빙성 있는 진술처럼 적혀 있었던 셈이다.
면담 참석자 초안은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박 전 행정관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 전 행정관은 면담 당시 진술에 대해 묻는 본보 취재진 질문에 "2013년 여러 여건상 조사를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김 전 차관 비리는 공직사회에서 일어나면 안 될 비리였다는 부분에는 지금도 공감하고 그래서 재조사 과정에서도 협조해 드렸다"는 입장만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사조사단의 절차상 위법 문제에 대해선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게 또 다른 혼선을 줄 수도 있기에 양해 부탁드린다"고 알려왔다.
'최순실 배후설'의 경우 당시 김학의 사건 주심 과거사위원이던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 수사로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관련 정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김 전 차관 아내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재판부는 "풍문만으로 검증 없이 김 전 차관 아내를 가십거리로 만들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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