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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살인' 오보가 부른 '택배 포비아'… 불똥맞은 업계 난감

입력
2021.04.15 04:30
수정
2021.04.15 16:1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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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사진으로 피해자 주소 파악" 부정확 보도
"핸드폰 번호처럼 주소도 암호화해달라" 요구 확산
택배업계 "현장기사 업무 가중, 소비자도 불편할 것"

8일 서울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 택배상자들이 쌓여 있다. 뉴스1

8일 서울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 택배상자들이 쌓여 있다. 뉴스1

'노원 세 모녀' 사건에 대한 충격이 택배 공포증(포비아)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 침입해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태현(25)이 스토킹 대상이던 큰딸 A씨가 온라인에 게시한 택배 상자 사진에서 피해자 주소를 알아냈다는 부정확한 보도가 유포된 탓이 크다. 택배에 부착된 운송장에서 주소도 식별할 수 없게 처리해달라는 고객 요구가 빗발치자 택배업계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김태현이 택배 통해 주소 알았다?

14일 택배업계 등에 따르면 노원 세 모녀 사건이 알려진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택배 운송장에 암호화된 주소를 기재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택배 수신자의 핸드폰 번호는 지금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식별 불가능한 안심번호로 변환하고 있듯이 수신자 주소도 비슷한 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택배를 받는 즉시 운송장을 찢어버리라는 조언이나, 물파스 아세톤 등으로 운송장 인쇄 잉크를 지우는 방법이 활발히 공유되는 등 택배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런 '택배 포비아'가 촉발된 것은 언론 등을 통해 김태현의 범행 수법이 구체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김태현이 참여한 단체 채팅방에서 A씨가 택배상자 사진을 게시한 것이 거처를 노출하는 계기가 됐다는 보도가 쏟아진 영향이 컸다. 하지만 한국일보 취재 결과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김태현은 "A씨가 지난해 12월 자신의 주소가 적힌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메신저로 보낸 일이 있어 주소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보도가 택배에 대한 불안을 필요 이상으로 가중시킨 셈이다.

택배업계 "주소 감추는 게 능사 아냐"

택배업계는 난처한 눈치다. 고객의 보안 강화 요구는 높아지는데 이에 부응할 대책을 당장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고객들이 회사에 직접 연락해 주소 비식별 처리 등을 요청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언론 보도를 통해 그런 여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주소 노출은 모든 우편 배달 서비스에 해당하는 문제로, 택배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장에서는 주소 암호화에 따른 고충이 클 거라고 토로한다. 한 택배기사는 "운송장에 적힌 주소 없이는 배달이 불가능하다"며 "기사들이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도 고객 상세주소가 안 나온다"고 말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회사 우편실이나 아파트 경비실을 통해 택배를 전달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분들이 세부 주소를 모른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운송장에 주소 노출 없이 바코드를 통해 고객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하루에도 수많은 택배를 취급해야 하는 현장 기사 입장에선 개인 휴대 정보단말기(PDA)나 핸드폰 앱으로 일일이 바코드를 인식하는 일이 과도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도 자신에게 택배가 제대로 왔는지 확인해야 할 텐데 운송장에 바코드만 있다면 식별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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