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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부상에도 '멀쩡 액션'... 진선규의 진심 연기

입력
2021.04.14 07: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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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배우의 덜 알려진 면모와 연기 세계를 주관적인 시선으로 전합니다.

배우 진선규의 다양한 모습들.

배우 진선규의 다양한 모습들.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2019)에는 배 위 액션 장면이 있다. 악당 조광춘(진선규)이 라이벌 폭력배였던 장세출(김래원)의 연인 강소현(원진아)을 납치해 감금하는 대목이다. 광춘은 소현을 구하러 온 세출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전력 질주해 몸을 던진 후 세출과 엉겨붙고 구른다. 보는 이까지 통증이 느껴질 장면이다.

진선규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이 장면을 찍기 전부터 허리 부상이 있었다. ‘롱 리브 더 킹’의 강윤성 감독은 “대역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 싶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진선규가 다쳤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럴 만한 게 너무나도 멀쩡하게 액션을 해서”였다. 강 감독은 “(진선규는) 촬영할 때는 고통도 잊는 배우다.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진선규는 '극한직업'에서 까칠한 마 형사를 연기했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제공

진선규는 '극한직업'에서 까칠한 마 형사를 연기했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제공

진선규는 카메라 앞에 서기 전부터 대학로 무대에서 익히 소문났던 배우다. ‘극한직업’(2019)에는 수사는 뒷전이고 치킨을 튀겨 내느라 정신 없는 마 형사(진선규)가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파, 지금 현재도 굉장히 쓰라린 상태야. 토막 살인범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매일 닭이나 토막내고 있는, 이 참담하고 막막한 심정을, 너는 아시냐구요!” 문어체 대사를 맛깔스럽게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연기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강 감독은 진선규를 “일단 연기는 그냥 믿고 가게 되는 배우"라고 했다. “어떤 캐릭터도 소화해내는 배우”라며 “최민식 선배님을 보면 날 때부터 연기자란 생각이 들었는데 진선규도 그런 배우”라고도 했다.

진선규가 MBC 드라마 ‘로드 넘버원’(2010)에 출연했을 때는 주연배우 윤계상이 그의 연기에 놀라 제자를 자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제’ 인연은 ‘범죄도시’(2107)로 이어졌다. 진선규는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됐는데 원래 맡은 역할은 이수파 두목 장이수(박지환이 연기했다)였다. 윤계상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조선족 폭력배 장첸(윤계상)의 오른팔 위성락을 연기하게 됐다. 스크린에서 들짐승처럼 날뛰는 위성락은 진선규의 얼굴과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단역으로 출연해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후 9년 만이었다.

진선규는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스님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제공

진선규는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스님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CJ ENM 영화사업본부 제공

내게는 ‘범죄도시’ 이전 3, 4년 전쯤부터 진선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강렬하진 않지만 성실했다. 그는 자신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위하는 배우 같았다. 출전 기회는 드문데 일단 경기에 나서면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야구선수 같은 느낌이었다. 방망이를 크게 휘둘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단 희생 플라이를 악착같이 쳐내거나 볼 넷으로라도 출루하려는 선수를 연상시켰다. 현장에선 박수받을 만하지만 대중이 기억하긴 어렵다. 외모는 선하게 평범했다. 숱 많고 긴 머리는 그의 선한 평범을 더욱 강조한다(‘범죄도시’에서 삭발을 한 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악독한 얼굴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래저래 진선규는 대중의 머리에 새겨지기 쉽지 않았다.

‘특별시민’(2017)을 보며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진선규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지저분한 일들을 은밀하게 뒤처리하는 길수를 연기했다. 영화 막바지에 변종구는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길수의 입에 고기쌈을 밀어넣는다. 길수에게 입 다물고 조용히 지내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장면인데 볼이 미어진 길수의 당황한 얼굴이 스크린에 크게 잡힌다. 최민식이 ‘올드보이’(2003)에서 산 낙지를 먹는 모습처럼 장면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는데, 진선규는 욕심내지 않는 듯했다.

진선규는 대작 SF영화 '승리호'에서 속정 깊은 전과자 타이거 박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진선규는 대작 SF영화 '승리호'에서 속정 깊은 전과자 타이거 박을 연기했다. 넷플릭스 제공

‘극한직업’을 촬영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마 형사(진선규)가 옥상에서 건너편을 살피는 장면을 찍다가 진선규가 멀리 한 건물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포착했다. 촬영을 바로 중단하고 화재 신고를 했다. 진선규가 아닌, 어느 배우나 했을 만한 조치인데도 진선규답다는 생각이 든다. ‘극한직업’을 제작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는 “사람이 이렇게 진실돼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라며 “뭐든 열심히 해 촬영하는 내내 고마웠다”고 말했다.

진선규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안현대감(허준호)의 호위무사 덕성을 연기했다. 덕성은 좀비들로부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고장난 문에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묶은 후 할복한다. 비장하고 울림이 제법 큰 장면이다. 진선규의 스크린 안팎 평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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