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도 무능하지만 '내로남불' 민주당은 최악"

입력
2021.04.12 20:00

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오세훈 후보라고 취업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민의힘도 무능하죠.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최악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친구들 모두가 하는 얘기예요.”

4·7 재·보선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찍었다는 송모(26)씨는 오 후보가 좋아서 찍은 것은 아니었다. 누가 최악이냐의 선택지에서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결론에 주저하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의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설마 최악인 국민의힘을 찍겠느냐며, 선거 내내 ‘국힘=부패=최악’ 프레임 공세를 펼쳤던 민주당에게 그들은 한마디로 ‘너희가 최악’이라는 응답으로 철퇴를 내린 셈이었다. 지지층 이탈이 가장 거센 세대는 20대였다. 그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연락한 이들 중 민주당에 대해 “혐오” “적대감”이란 단어까지 꺼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2030세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180석을 장악했던 민주당이 1년 사이에 최악으로 전락한 까닭은 무엇일까.


재보궐 선거일인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청년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20대의 삶 너무 모른다… 켜켜이 쌓인 분노 폭발”

선거 초기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여론조사상 낮은 20대 지지율에 대해 “역사적 경험치가 없다”고 하거나 친문 스피커들이 20대를 비하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은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었다가 이번에 오세훈 후보를 찍었다는 나모(27)씨는 “민주당이 20대의 삶을 몰라도 너무 몰라 화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일해서 받는 돈은 적은데, 주변에서 비트코인이나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됐다고 하고, 누구는 벼락거지가 되고. 코로나 상황은 계속 안 좋고, 내 집 마련은 생각도 못 하고 결혼은 꿈도 못 꾸고…”

그렇다고 현실의 부조리를 모두 집권당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20대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국민의힘이라고 한들, 취업이 잘되거나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제 정말 지쳤다”고 말하는 20대의 가슴을 헤아리기는커녕 비수를 꽂았다. “이번 선거를 보니 나뿐만 아니라 20대 모두가 비슷한 심정인 걸 알았다” “켜켜이 쌓인 분노가 폭발한 것 같다”며 20대의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배경이다.

20대를 향해 세상 물정 모른다는 식의 비하 발언은 결국 20대의 환경을 눈곱만치도 모르는 이들이 아는 척 훈계한 것으로 민주당 특유의 오만하고 위선적인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무능함은 정치권의 상수다. 민주당은 그러나 “무능한 주제에 자기만 옳고 남 탓만 하는” 오만과 위선까지 겹쳤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7일 밤과 8일 새벽 각각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소와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상반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20대 공정 이슈 모두에서 똥볼”

젊은 층에서 불공정 이슈 논란을 일으켰던 '조국 사태'를 겪고도 지난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거머쥐었다. 올해 3월 터졌던 LH 사태로 민주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부동산 폭등과 전셋값 인상, 재산세 등이 선거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거론됐다.

물론 주거 문제가 30, 40대에선 주요 관심사지만 20대는 다소 다르다. 이에스더(24)씨는 “20대가 아직 집을 장만할 때가 아니어서 부동산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며 “내 경우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때문에 표를 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할 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고 박 전 시장을 두둔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핵심 지지층이었던 20대 여성들마저 흔들린 데는 박 전 시장 사건을 둘러싼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가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이탈 폭이 가장 큰 20대 남성들이 제기하는 불만은 불공정 문제가 압도적이다. 대학생 백모(26)씨는 “조국 사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취업할당제 이슈 등 민주당은 20대 남성들이 관심을 가진 거의 모든 이슈에서 똥볼을 찼다”고 말했다. 20대의 핵심 화두인 젠더와 공정성 이슈에서도 민주당이 오만하고 이중적이었다는 얘기다. 불공정과 이중성, 오만과 위선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다름 아닌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 민주당… 젠더 이슈마저 이중 잣대”

민주당이 여성 편향적이라는 것은 그간 20대 남성들의 주요 불만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박 전 시장 사건에선 여성 피해자 편을 들지 않았다. 이는 20대 남성의 호응을 이끈 게 아니라 오히려 남녀 모두에게 민주당은 '내로남불 정당'이라는 인식만 강화시킨 꼴이었다.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이연지(24)씨는 “민주당이 젠더 이슈에서도 위선적이라고 느꼈다”며 “페미니즘을 내세우지만 그게 정말 여성을 위한 건지도 의문이다. 남녀 갈등을 더 조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성취업할당제의 경우 동의하지 않는 친구도 많다. 나도 원치 않는다”며 “여성의 취약한 부분을 고려하되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더 좋은 정책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경력 단절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되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력 단절자 전체의 대책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젠더 이슈 역시 20대가 중시하는 공정성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남녀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에 거리를 두고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되 일관된 양성 평등 정책을 펴야 20대의 젠더 갈등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페미니즘을 표방한 여성 후보들이 3명이 나왔지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의 지지가 40.6%에 이른 것도 페미니즘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대목이다.

4 7재보선을 앞둔 지난 3일 서울 용산역 앞 유세장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청년 지지자들과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어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오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오 후보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뉴스1


"20대 보수 아냐, 민주당 도덕적 신뢰부터 회복해야"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20대 표심을 두고 민주당 일각에선 20대가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진단도 없지 않다. 예컨대 20대 남성이 여성 혐오와 극우 보수적 성향 사이트인 '일베'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 인식에서 20대 남녀 간 간극이 있긴 하지만 20대 남성들이 그렇다고 50대보다 젠더 인식이 떨어진 게 아니다"라며 "20대 여성은 이른바 '메갈', 20대 남성은 '일베'라는 식의 스테레오타입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은 소수에 불과하고 젠더 문제에서도 20대 남녀 모두가 다른 세대에 비해 진보적인 인식을 보인다는 것이다.

20대가 중시하는 공정성이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게 아니냐는 게 기성세대의 우려다. 20대의 공정성 감각이 빈부 환경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기회 균등에 머문다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의 공정 개념이 능력주의를 함의하고 있어 격차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긍정적 측면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20대가 공정에 민감한 것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기회조차 없는 현실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교수는 "20대 내에서 빈부 격차가 아주 크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며 "상위층은 공정한 기회 정도를 얘기하지만, 하위층은 그런 기회조차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20대가 이번 선거를 통해 기성 세대를 향해 던진 젠더 및 공정 이슈는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 전체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다. 집권 여당은 그러나 내로남불이란 ‘선택적 공정’의 모습을 취하면서 해결의 출발점조차 찾지 못한 상태다. 김호기 교수는 “지금으로선 여권이 무슨 말을 해도 20대들에겐 먹혀들지 않는 신뢰의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라며 “단순한 인적 교체나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무엇보다 윤리적 쇄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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