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 안하면 '영원한 이방인'…일본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입력
2021.04.14 04:30
<35> 일본을 떠나며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수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자 오랜 친구가 지역 특산품으로 꾸린 전별의 선물을 보내주었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을 떠나며

일본을 떠나기로 했다. 어느새 18년째에 들어선 일본 생활을 접겠다 하니 “코로나19 때문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사람도 있다. 팬데믹 이후 국가 간 이동성이 현저하게 제한되며 쉽게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던 예전과는 체감이 확연히 달라졌다. 우선 한일 간 비행편이 줄어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 어렵사리 표를 구해도 국경을 넘을 때마다 번번이 2주일씩 자가 격리 의무를 져야 하니, 어지간한 이유가 없이는 여행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 생활의 심리적, 경제적 부담감이 상당히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일본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팬데믹이 초래한 비일상적 상황은 인터넷 문화의 본질적 요소인 이동성의 명암을 생생하게 체험할 기회라는 생각도 있다. 연구자가 그 정도의 불편을 마다해서 되겠느냐는 근성 정도는 있다. 일본 생활을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늘 ‘이방인’인 그곳에서의 삶이 고민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늦깎이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학업에 바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일본의 대학에 적을 두고 비교적 안정된 삶을 영위하게 된 뒤에야,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 나아가 한국인으로 산다는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삶의 방식이다. 실제로 지금은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이유에서, 혹은 보다 좋은 삶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방인이 되기를 선택한다. 과거에는 고달픔의 대명사였던 ‘노매드’ (nomad·유목민)가 지금은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로 회자될 정도다. 실제로 이방인의 삶에는 편한 점이 있다. 적어도 사적인 측면에서는 자유로이 개인적 취향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공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방인의 삶은 불안정하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이 생활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외국인도 지방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하며 지역 사회에 기여하면 한 명의 주민으로 인정해 준다. 반면, 일본에서는 ‘귀화’해 국적을 획득하지 않는 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곳의 주민으로 인정받을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이주해 정착했으나 끝내 귀화를 거부했던 ‘자이니치’ (일본에서는 ‘특별영주자’라고 부른다)들은 반세기가 넘도록 참정권이 없었다. 한국 정부에서 재외 국민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 뒤에야, 힘겹게 한국 국적을 유지해 온 자이니치에게도 시민으로서의 의견을 표명할 창구가 생겼다. 일본 사회는 변함없이 외면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가 늦게나마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적어도 시민 사회라는 측면에서는 ‘외부자’에 대한 한일 간 인식 차이가 뚜렷하다.

일본 사회의 정치적 우경화가 뚜렷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케이팝 등 한국의 대중 문화가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면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일본에서 한국이 화제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많은 외국인 중 한 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고정관념과 씨름해야 하는 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 정치인이 내뱉는 한국 사회에 대한 왜곡된 발언에는 부아가 치밀고, 일본의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한국인의 이미지가 때로는 부담스럽다. 냉각되는 한일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난감한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개인적인 의견이 마치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양 받아들여지니 부담스럽다.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진 필자로서는 ‘자연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저항감이 작지 않았지만, 외국에 살면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애써 생각해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연구자로서의 고민이 커졌다. 한국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이 연구 주제를 침범하는 상황이 수시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인터넷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연구자로서의 객관적 견해가 한국인이라는 협소한 맥락에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영 불편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우익’, ‘혐한’, ‘케이팝 붐’ 등은 일본의 인터넷 공간을 특징짓는 문화 현상이고, 동시에 일본 사회가 한국 사회를 보는 관점이 투영된 커뮤니케이션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적 정체성이 복잡하게 뒤엉킨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딜레마를 느낄 때가 많았다. 점점 강해지는 국가주의 프레임 속에서, 연구자로서의 발언이 한국인이라는 맥락에서 곡해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아예 한국인으로서의 의견을 요구받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연구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낀 지는 꽤 오래되었다. 몇 년 동안의 고민 끝에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씨름하기보다, 모국으로 돌아가 연구자의 객관성을 흔들림없이 지키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 사회가 싫어서’ 혹은 ‘일본 생활에 지쳐서’라기보다는 연구자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는 나름의 결단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또 누군가에게는 군색한 변명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에게는 장고 끝의 한 수였다.

◇문화적 순혈주의보다는 타문화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실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은 ‘일본 사회는 배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인, 일본 문화에 대한 순혈주의가 강하다 보니,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크고 더불어 사는 주민으로 껴안는 사회적 노력이 부족하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전개되는 탈국가적 사회 현상을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단조로운 잣대로 읽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자이니치 등 문화적 경계선에 자리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쉽게 정당화되는 근저에도 배타적인 순혈주의가 깔려 있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본인으로 사는 것도 나름의 고민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의 시민 사회가 일본보다는 개방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못지않게 폐쇄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디지털 네트워크로 하나된 세상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문화적 순혈주의를 부르짖기보다는 이방인을 받아들이고, 타문화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하지 않겠는가?

막상 일본을 떠나니 후련함보다 서운함이 앞선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그럴싸한 송별회는 할 수 없었지만, 우정을 쌓아 온 몇몇과는 떠나기 전에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 지방에 사는 친구는 정성스러운 전별의 선물 꾸러미를 우편으로 부쳐주기도 했다. 공적으로는 이방인이라는 정체성과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되니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더없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섭섭함이 크다. 몸은 일본 땅은 떠났지만 온라인으로 변함없이 강의를 한다. 재택 근무와 온라인 업무가 일반화되는 ‘뉴 노멀’을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실은 팬데믹 원년인 지난해에도 강의는 전부 온라인으로 소화했으니, 사는 곳이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덕분에 이 칼럼의 얘깃거리도 끊이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한국일보가 지면을 허락한다면 말이다.

김경화 ? 미디어 인류학자
같은 일본, 다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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