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사각지대' 美 미등록 이민자, '코로나 블랙홀' 되나

입력
2021.04.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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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없는 불법 이주자에 백신 '그림의 떡'

지난달 1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센터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센터에서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장벽’을 넘어 가까스로 미국에 입성한 불법 이민자들 앞에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한 백신 접종이 미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미등록 이민자들겐 그림의 떡이다.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백신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집단면역 달성은커녕 이들이 ‘코로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간) 운전면허증과 사회보장번호(SSN), 건강보험증 등이 백신 접종에 필요한 신원 확인 증명서로 활용되면서 이를 구비하지 못한 미등록 이민자들이 접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WP 집계에 따르면 미 50개주(州) 중 절반이 넘는 26곳이 지역에 거주하거나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백신 접종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이주노동자 권익 단체 ‘브라질노동자센터’를 운영하는 나탈리시아 트레이시 이사는 “(백신 접종 현장에서) 신분증 제출 요구는 주 신분증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운전면허증 등 주 신분증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지역은 26개 주 가운데 10곳과 수도 워싱턴에 불과하다.

연방정부는 이런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체류 자격과 상관 없이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토안보부는 WP에 “미국에 체류하는 개인에게 백신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은 도덕적이며 공중보건적인 필수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시 추방 위기에 놓여 있는 미등록 이민자들에게 연방정부의 방침은 듣기 좋은 말에 그친다. 보건정책 연구그룹 카이저가족재단에 따르면 전체 주 홈페이지의 4분의1 만이 서류 미비 이민자들도 백신을 맞을 수 있으며, 백신 접종이 이민 신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공지하고 있다.

결국 불법 이민자들은 더욱 더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다. 브라질노동자센터는 신문에 “2일 하루 200명 이상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지만 대기 인원은 2,500명이 넘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라도 백신을 맞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백신 혜택에서 소외된 나머지 이민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으면 미국의 코로나19 종식도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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