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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간 여왕의 남편"...英 여왕 부군 필립공 99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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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에든버러 공작(필립공)이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왕실과 시민들은 74년 동안 여왕의 곁을 지킨 필립공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버킹엄궁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필립공이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왕실 예법에 따라 사망을 알리는 공고문도 버킹엄 궁전 앞에 걸렸다. 필립공은 윈저성 안에 묻힐 예정이고, 장례식도 성 내부의 성조지 예배당에서 진행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일반 시민의 장례식 참여는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앤드루 왕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앤드루 왕자는 그리스 왕위 계승 서열 1위였고, 덴마크의 왕위계승권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필립공의 삶은 험난했다. 필립공이 태어난 이듬해 그리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왕이었던 큰아버지를 비롯해 왕실 일원 모두에게 추방령이 내려졌다. 필립공의 가족은 외가 친척인 조지 5세 당시 영국 국왕의 도움을 받아 겨우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다.
파리에 거주하던 필립공은 7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외삼촌인 마운트배튼 백작과 함께 지내게 됐다. 이맘때 어머니가 조현병에 걸려 거의 만나지 못하고, 누나들은 결혼해 독일로 떠나면서 외로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불행을 딛고 성장한 필립공은 외가의 전통에 따라 다트머스 영국왕립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해군사관학교 진학은 필립공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생도 신분이던 1939년, 당시 14세였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7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필립공이 영국 해군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당시에도 연락은 끊기지 않았다.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은 1947년 11월 20일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렸다. 전쟁에서 돌아온 필립공은 여왕에게 청혼했고, 결혼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대부분을 반납했다.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위계승권도 포기했고, 영국으로 귀화하며 외삼촌의 성인 마운트배튼을 사용하기로 했다. 종교도 그리스 정교에서 성공회로 바꿨다.
결혼 이후엔 해군 장교가 아닌 여왕의 남편 역할에 집중했다.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의 건강이 악화되자, 필립공은 1951년 해군 장교로서의 업무를 그만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3년 즉위한 이후에는 여왕의 남편으로서 왕실 공식 업무에만 충실했다. 2017년 공무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2만2,191건의 업무를 수행했다.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대신 자선 · 학술단체의 후원에 힘썼다. 무려 780개가 넘는 민간단체를 후원했다. 여왕인 아내에게 예우를 표하며 언제나 한 발 뒤에 물러서 있던 필립공의 모습은 영국 시민들의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가 시간은 스포츠를 즐기며 보냈다. 매년 여름 요트 경기에 참여했고, 크리켓과 폴로도 즐겼다. 1960년대에는 영국에서 폴로로 네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필립공은 자신의 여가생활도 업무와 연결시키며 1956년 ‘에든버러 공작상’을 제정했다. 14~2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탐험, 운동 등의 활동을 지원하고, 결과에 따라 상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130만명이 넘는 청소년과 130개가 넘는 국가들이 참여했다.
여왕과의 금슬도 좋았다. 결혼 1년 후 첫아들 찰스 왕세자가 태어났고, 1950년엔 딸 앤 공주가 태어났다. 늦둥이인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도 탄생했다. 찰스 왕세자를 비롯한 자녀들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것과 달리, 여왕과 필립공의 사이는 좋았다. 오히려 자녀들과 비교되는 모범적 결혼생활로 영국 시민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여왕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돌아올 때면 자연스레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필립공은 1997년 결혼 50주년 기념 금혼식에서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필립공도 세월의 흐름을 피해갈 순 없었다. 2011년엔 동맥경화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고, 2016년 연말엔 감기가 심해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2017년엔 왕식 공실 업무에서 은퇴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올해 초에도 필립공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월엔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병원에 머문 기간은 28일로, 필립공이 이때까지 받은 입원 치료 중 가장 길었다.
결국 필립공은 9일 세상을 떠났다. 여왕의 오랜 동반자의 사망 소식에 영국 각계각층에서 추모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별세 소식을 듣고 "필립공은 비범한 삶을 살았다"며 “셀 수 없이 많은 젊은이의 삶에 영감을 줬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영국 정부는 조기를 게양했다.
정치권은 물론 종교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었다”고 필립공을 회상했다. 영국 시민들은 버킹엄 궁전과 윈저성 앞에 꽃을 놓으며 필립공을 추모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애도가 계속되고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애도를 표하며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필립공을 여왕의 동반자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필립공은 우리 가족의 오랜 친구였다”며 오랜 친구의 죽음에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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