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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95일 만에 한국 선박·선장 억류 해제... 핵합의 복원 의식했나

입력
2021.04.09 20: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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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결자금 문제' 해결 노력도 긍정 영향

9일 오전 이란 반다르압바스항 인근 라자이항에서 출항하는 한국케미호를 향해 주이란 한국대사관 김재우 부영사가 손을 흔들고 있다. 외교부 제공

9일 오전 이란 반다르압바스항 인근 라자이항에서 출항하는 한국케미호를 향해 주이란 한국대사관 김재우 부영사가 손을 흔들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이란 혁명수비대가 9일 한국 선박 ‘한국케미호’에 대한 억류를 해제하고 한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1월 4일 나포 이후 95일 만이다. 당초 이유로 들었던 환경 오염에 대한 증거는 끝내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이란이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선박을 볼모로 붙잡은 뒤, 열쇠를 쥔 미국과의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이 본격 개시되자 풀어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케미호 출항... '환경오염' 사법절차 종료

외교부에 따르면 이란 남부 라자이항에 억류돼 있던 한국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는 이날 10시 20분쯤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항으로 출항했다. 한국케미호에는 한국인 선장과 선박 관리를 위해 교체 투입된 선원 등 총 13명이 타고 있으며, 이 중 우리 국적 선원은 5명이다. 주이란 한국대사관 소속 영사가 승선해 떠나기 직전까지 선원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선박은 푸자이라항에 도착하는 대로 전체 점검을 실시하고 귀국 등 향후 일정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2월 2일 선원 전원을 석방하면서 선장과 선박에 대한 억류는 해제하지 않았다. 환경 오염 혐의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치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란이 엄포를 놨던 사법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사와 이란 항만청 간 합의로 이란 측 국내 법적 절차가 종료됐다"며 "환경오염 여부는 확인이 안 됐다. 아직도 우리 선사는 환경오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부 동결자금 해결 노력 주효했나

외교부는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에 이란 정부가 마음을 돌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에는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로 동결된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원유수출대금 약 70억 달러(약 7조6,000억 원)가 예치돼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고 독자 제재에 나서면서 묶인 돈이다. 이란 측의 부인에도 당초 동결자금 반환을 노리고 우리 선박을 나포했다는 관측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실무대표단을 현지에 파견했고,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이란 정부 관계자들과 대면 협의를 가졌다. 양국 외교장관 통화를 포함한 고위급 소통과 대사관 채널, 국회 외교 채널도 가동했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형 인도적 교역채널(SHTA)을 활용하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해 왔고 동결자금을 활용한 이란의 유엔 분담금 약 1,600만 달러(약 180억 원) 대납, 국내 기업들의 대이란 인도적 지원 증가 등의 방안에서 진전이 있었다. 이와 관련, 정세균 국무총리는 오는 1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해 양국 현안과 협력 증진을 논의한다.

JCPOA 협상 맞물려 억류 득실 따진 듯

무엇보다 최근 이란이 JCPOA 복원을 위해 당사국들과 협상을 시작한 게 주효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선박을 장기간 억류할 경우 대화 분위기 조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JCPOA가 진전되면 동결자금 문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유관국과 협의했다"며 "미국과 이란의 JCPOA 복귀 및 상응하는 조치를 논의하고 있는데 언론을 보면 관련해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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