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는 어떻게 파운드리 최강이 됐나

입력
2021.04.09 15:12
수정
2021.04.09 16: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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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 뛰어들면서 반도체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파운드리는 다른 업체가 그린 설계도대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업체다. 일종의 하청인 셈이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직접 설계해 오랜 세월 세계 1위로 군림한 반도체 원조기업 인텔이 하청 생산까지 하겠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만큼 세계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방증이다.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삼성전자도 파운드리를 하고 있지만 이 분야에서 세계 1위는 대만의 TSMC다. CPU 3대 기업인 인텔, AMD, 애플과 통신용 반도체의 양대 산맥 퀄컴과 브로드컴, 인공지능(AI)과 그래픽반도체의 강자 엔비디아, 게임기의 투 톱인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모두 TSMC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고 있다. 그 바람에 TSMC는 미처 생산을 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밀리고 있다. 반도체 위탁 생산을 맡기는 기업들은 TSMC가 주문을 맡지 못하면 그제야 다른 기업을 찾는다.

TSMC는 어떻게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했을까. 의외로 답은 사훈에 있다. TSMC는 사훈이 곧 전략이다. 어떻게 사훈이 전략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내용을 보면 수긍이 간다.

TSMC의 사훈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이다. 쉽게 풀면 고객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TSMC는 애플과 경쟁 관계에 놓이는 스마트폰이나 소니, MS와 맞붙어야 하는 게임기 등을 만들지 않는다. 언뜻 보면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한 점이다.

이 때문에 TSMC에 반도체 생산을 맡기는 기업들은 전략 노출이나 비밀 유출을 걱정하지 않는다. TSMC는 이를 객호신임(客戶信任)이라는 말로 정리해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고객의 신뢰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객호신임 원칙은 창업 초기 경험에서 비롯됐다. 1987년 공기업으로 출발한 TSMC는 처음에 D램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생산량 대비 완성품 비율을 나타내는 수율이 좋지 못해 미국과 일본 전자업체들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때 미국 반도체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부사장 출신이었던 모리스 창 TSMC 창업주는 당시 D램을 만들던 미국과 일본이 TSMC를 잠재적 경쟁자로 의식해 기피한다고 봤다. 그는 퇴짜 맞은 D램을 오디오램(ARAM)이라 이름 붙여서 품질이 떨어져도 쓸 수 있는 오디오 기기용으로 납품했다. 사실상 경쟁을 피해 시장을 만든 셈이다. 이런 경험이 고객사와 경쟁을 피하는 사훈과 객호신임 원칙으로 굳어졌다.

반면 인텔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을 맡기려는 기업들 입장에서 껄끄럽다. 스마트폰, 통신칩, CPU, 응용 프로세서(APU)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 관계인 제품과 부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반도체 패전’이라는 책을 쓴 반도체 전문가 유노가미 다카시는 삼성전자가 설계부터 제조, 제품 적용까지 일괄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가 된 것을 장점이자 단점으로 봤다.

따라서 인텔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따라잡으려면 TSMC 못지 않은 객호신임의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러기 힘들다면 TSMC의 A램처럼 파운드리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유노가미 다카시는 반도체 분야의 이노베이션, 즉 혁신은 시장 창조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삼성전자는 그럴 수 있는 기술과 마케팅 능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객호신임과 시장 창조가 앞으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업체들의 명운을 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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