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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입력
2021.04.10 04:30
수정
2021.04.12 15:05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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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는 순서나 승부를 정하는 방법이다. 손가락 두 개만 펴면 ‘가위’, 주먹을 쥐면 ‘바위’, 손가락을 모두 편 것이 ‘보’인 것은 유치원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기대 반 염려 반으로 내미는 손 모양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데도,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한 이상 이긴 쪽도 진 쪽도 순순히 승복하고 만다. 살면서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가위바위보’란 말은 익숙하다. 그런데 이 말을 외국어로 만나 보면 손 모양도, 순서도, 지시물도 조금씩 다르다. 영어의 ‘rock(바위)-paper(종이)-scissors(가위)’가 그렇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도 ‘보’ 대신에 종잇장을 소환한다. 그러면 가위에는 지지만, 바위에는 이긴다는 ‘보’는 한국인의 삶에 어떤 의미였을까?

‘보’는 물건을 싸거나 덮는 데 쓰는 천이다. 중국말 가위바위보(石?剪子布)에도 ‘보’가 있지만, 우리말 보자기는 단순히 잘라놓은 천의 한 조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자기라 하면 우선 분홍과 금색 등 고운 색과 정성스러운 손길이 떠오른다. 오방색으로 천을 이은 ‘조각보’, 꽃수를 놓았다는 ‘꽃보자기’가 바로 그런 말이다. 보자기의 쓰임을 보여주는 ‘떡보자기, 책보자기, 손보자기, 약보자기’도 있다. 보자기가 무언가를 씌우거나 담아내는 것인 만큼 ‘마음을 쓰는 바탕’이란 ‘맘보자기’도 있다. 우리 할머니들 일상에 ‘바재기, 보침, 보이, 보자빡, 보작지, 어제기, 보꿍제기’가 전국적으로 펼쳐져 있었을 것이고, 혹시나 맵시가 흐트러질까 힘줘 매듭짓는 모양새는 어디서나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보자기 문화가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 ‘korean traditional bojagi wrapping’이란 말에서 보자기는 ‘네모난 천’이 아니라 아예 고유명사 ‘bojagi(보자기)’로 불린다. 보자기는 드라마의 소품으로 종종 쓰이면서, 사극을 통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은 왜 한국의 보자기에 주목했을까? 일단 정성스럽고 품격 있어 보이며 개성을 드러낼 포장법으로 관심을 끌었을 것이나,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보자기는 펼쳐 놓으면 어떤 형태의 물건이라도 감쌀 수 있다. 내용물의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다시 쓸 수 있는 친환경 포장법으로 인식한 것이다. 한때 할머니 냄새가 난다던 보자기는 이제 나라 밖에서 ‘재생의 아이콘’으로 부활했다. 바위도 감싸 덮어버린다는 보자기는 ‘포용과 상생’을 말하고 있지 않은지?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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