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큰 정부 시대

입력
2021.04.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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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에서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안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백악관에서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안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큰 정부가 돌아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에 서명한 데 이어 지난주 2조 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인프라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주요 외신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탈규제ㆍ감세ㆍ민영화를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폐기하고 ‘큰 정부 시대’를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재원 조달을 위해 전임자가 21%로 낮춘 최고 법인세율도 28%까지 올리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정부가 아니라, 문제는 바로 정부”라고 일갈했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사회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나와 가족뿐”이라며 노조 와해와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대처 전 영국 총리 이후 40여 년간 ‘작은 정부는 선(善)’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 ‘사적 소유를 공적 소유로 전환한다’는 노동당의 핵심강령을 70여 년 만에 삭제한 토니 블레어나 “큰 정부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며 복지 감축, 감세 같은 우파 정책을 받아들인 빌 클린턴의 노선 역시 레이건과 대처가 추구한 작은 정부 노선의 자장(磁場) 안에 있었다.

□ 큰 정부의 갑작스런 귀환을 불러온 건 전대미문의 충격을 준 코로나 사태라는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큰 정부 출현의 징후는 이미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득격차의 심화, 주주들의 이익에만 관심 있고 복지는 외면하는 초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등장, 디지털 경제 전환에 따른 노동자들의 분자화 등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개인의 삶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저류에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단지 이런 흐름의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라는 얘기다.

□ 81만 개의 공공일자리 창출 공약과 매년 이뤄지는 3만 명가량의 공무원 증원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 역시 큰 정부를 지향한다. 특히 시장에 맡겨져 있던 보육ㆍ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투자 전략은 저출산 노령화에 적극적 정부 개입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공공부문 비대화에 대한 반감과 심화하고 있는 양극화 해법으로서의 정부 개입이라는 대중들의 이율배반적 욕구가 앞으로 어떤 정책적 흐름으로 수렴될지 관심사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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