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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동영상' 윤중천·김학의는 왜 성폭행 처벌 안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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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이 공개되며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남성들의 무더기 형사처벌이 예상됐다. 여론을 등에 업은 경찰은 2013년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 20명 이상을 조사했고, 이 가운데 '확실한' 성폭력 피해자 3명을 특정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8년이 흐른 지금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물론 어떤 남성도 성범죄 혐의로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이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봐주기 논란이 일었지만, 온전히 검찰만의 결정은 아니었다. 2013년 1차 수사 때는 검찰시민위원회까지 무혐의 결정에 동의했고, 2014년 2차 무혐의 결정을 두고는 고소인이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했지만 결론을 뒤집지 못했다.
윤중천씨와 김학의 전 차관은 왜 성범죄로는 처벌받지 않았을까. 사건 기록을 살펴본 법조인들은 ‘회색지대'에 놓인 이 사건의 특징에서 원인을 찾는다. 성접대와 성착취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데다, 여성들 진술도 특수강간이란 중범죄를 입증하기엔 일관되지 못하고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성폭력 혐의 성립 여부는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내부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이슈였다. 최종 결과보고서엔 ‘금전적 기대에 따른 여성들의 자발적 성접대'라는 다수의견과 ‘윤중천의 지배·예속 상태에서 벌어진 성범죄’라는 소수의견이 동시에 담겼다.
경찰은 2013년 협박과 강요, 신체적 제압 탓에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본 여성 3명을 특수강간·상습강요 피해자로 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소위 '유흥업소 여성'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빼고, 거르고 걸러서 남은 여성들만 피해자로 봤다”고 밝혔다.
‘연예인 지망생’으로 알려진 L씨는 2013년 검찰의 1차 수사 당시 "윤중천의 강간과 폭행, 협박 탓에 심리적 억압 상태에서 김학의 등 여러 남성에게 성상납을 강요 당했고, 불법촬영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L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반발해, 2014년 7월 윤씨와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다시 고소했다. '김학의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이 자신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의 2차 수사 결론도 역시 무혐의였다.
대학원생이던 J씨는 2007년 11월 지인 소개로 윤씨를 알게 된 뒤 성폭행을 당했고, 2008년 3월 "도움 될 사람을 소개시켜주겠다"는 윤씨 말에 속아 친구와 함께 원주 별장을 찾았다가 재차 피해를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J씨는 “윤중천이 팔을 강제로 끌면서 옷 방에 밀어 넣었고, 방 안에서 기다리던 김학의가 힘으로 제압해서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여성 P씨도 J씨와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고 했다. 2007년 4월쯤 윤씨가 자신을 L씨 집으로 불러 안방에 밀어 넣었고, 김 전 차관이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J씨와 P씨의 경우 윤씨와 김 전 차관, 즉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한 것으로 보고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성범죄는 명백한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어 피해자 진술이 혐의 유무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검찰은 여성들 진술을 전부 믿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고 봤다. 윤씨와 김 전 차관의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검찰은 여성들이 윤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에도 윤씨 및 주변 남성들과 성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때로는 용돈으로 수십만원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사건의 성격을 '성폭행'이 아닌 '성접대'로 판단했다.
J씨와 P씨 진술을 따르더라도 특수강간죄를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하는데, 윤씨와 김 전 차관이 여성들을 힘으로 제압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J씨는 특히 윤중천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성폭행 고소'를 이용한 정황이 있었고, 자신의 친인척을 윤씨의 운전기사로 일하게 한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의구심이 더해졌다. P씨도 검찰 조사에서 “경찰로부터 선뜻 내키지 않은 성관계를 한 게 강간이란 설명을 듣고 피해 진술을 했지만, 조사 후 강간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아 피해자에서 빼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 내부에선 이런 상황을 종합해 “애초 성폭력이 아니라 김학의에 대한 윤중천의 성접대 뇌물 사건으로 수사됐어야 할 사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윤중천에게 1년 반 넘게 성접대를 강요당했다는 L씨의 경우, 윤씨의 의한 폭언·폭행·협박·성적 학대 정황이 비교적 일관되게 드러났다. 윤씨는 성관계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L씨를 협박했고, L씨가 성접대를 거부하면 욕설과 함께 손찌검을 하고, 성관계 전 흉기로 위협하며 폭력적 행동을 이어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중천은 L언니에게 집을 얻어주고 나서 김학의나 여러 사람에게 성접대를 시키며 오랫동안 너무나 괴롭혔다. ‘씨XX’이라고 말하는 건 기본, L언니가 말을 안 듣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거나 엄청나게 욕하고 윽박지르며 협박했다. 인격을 가진 여자나 애인으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성적 노예로만 생각해 함부로 대했다.
성접대에 동원됐던 여성의 경찰 진술 중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심리적 억압 상태 및 복종 관계가 형성됐다는 게 L씨 주장이었지만, 검찰은 성관계 당시 윤중천씨나 김 전 차관의 구체적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협박이 있었어도 L씨가 “로비스트로 키워주겠다”는 윤씨 말을 믿고 성접대를 한 것이라면 이를 강요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검찰 판단이었다. 윤씨가 L씨에게 오피스텔(보증금 1억 5,000만원)과 잡화점(보증금 1억원)을 얻어준 것도 L씨에겐 불리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형사처벌 여부를 떠나, 윤중천씨가 여성들을 대했던 방식은 명백히 폭력적이고, 성착취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높다. 여성들 진술을 종합하면 윤씨의 행태는 '패턴화된' 모습을 보인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여성을 상대로 강압적 성관계를 갖고, 이후 인맥과 경제력을 과시하며 큰 도움을 줄 것처럼 유인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여성들이 윤씨가 놓은 덫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관계가 지속되면, 윤씨는 성관계 불법촬영물로 상대를 협박하고, 폭언·폭행을 일삼거나, 때로는 여성에게 수천만 원의 빚을 지면서 자신의 영향력 아래 뒀다. 성접대가 가능했던 이면엔 윤씨와 여성들의 예속 관계가 깔려 있었던 셈이다.
“노예처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까라면 까고, 짐승도 그렇게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L씨) “(나를) 고위간부에 접대하듯이, 접대부 쓰듯이 썼다.”(J씨) “무슨 성접대 하듯이, 그냥 아무나 옆에 앉혀서 같이 자라고 하는 게 싫고, 우울증 걸릴 것 같았다.”(P씨)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보고서 속 여성들 진술
L씨 사례처럼 피해가 장기간 계속된 경우, 성관계 당시의 폭행·협박 여부만으로 강간죄·강요죄를 판단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협박과 폭력이 장기간 누적돼 항거불능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는 성범죄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L씨가 윤씨에게 받았다는 오피스텔도, 윤씨가 마련한 성접대 장소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L씨는 "법조인인 '학이 형'은 자기 집 드나들 듯 일주일에 두세 번 찾아왔다"고 말했다. 윤씨가 오피스텔에 다른 여성들을 불러들여 성접대를 시켰다는 진술도 다수 나왔다. 검찰 재수사단은 2019년 윤씨를 L씨에 대한 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의 스폰서 관계에 집중하면 성접대에 의한 뇌물이 사건 핵심이겠지만, 윤씨가 김 전 차관을 비롯해 수많은 남성들에게 성접대를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착취가 사건의 본질이란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2013년 김학의 사건이 알려진 뒤 지금까지도 여성들은 늘 주변부에 있었다. 경찰과 검찰,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은 여성보다는 성접대를 받은 유력 인사들의 이름과 지위에 집중됐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이 사건이 성범죄 사건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이유는 모두들 윤중천 입에서 나오는 대어(大魚)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윤중천의 성착취 행각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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