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거부권 시한 D-3… SK 배터리의 운명은?

입력
2021.04.09 04:30
16면
구독

거부권 행사 이끌어 내려 사장·이사회 의장 총출동
불발 시엔 3조 원 합의금보다 철수 가능성 높아
미국 인건비·충당금 등 부담… 유럽·중국에 집중할 듯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의 운명을 가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마감 시한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나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 모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배터리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2월 10일 10년간 미국 내 수입 금지를 결정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60일 이내인 4월 11일자정(현지시간)까지 행사할 수 있다.

SK이노, 美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총력전

8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막바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최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과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김종훈 이사회 의장 등이 미국을 찾아 SK이노베이션 미국 배터리 공장이 건설 중인 조지아 주지사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지금까지 미국에 투자·기부 등으로 기여한 SK이노베이션의 노력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철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산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배터리 수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을 감안해 미국 행정부 설득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ITC가 이미 고객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폭스바겐과 포드에 공급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국익을 침해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힘들다. 또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ITC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거부권 불발되면 무리한 합의보다 철수에 방점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미국 사업을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LG에너지솔루션과 무리하게 합의를 해서 미국 사업을 유지하기보다는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미국 투자금과 철수 비용 등을 감안했을 때 1조 원이 합의금의 상한선"이라며 "부지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인 2공장은 공정 진행을 많이 늦추고 있으며,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고 합의금 조정에도 실패하면 포드에 위약금을 주더라도 공장을 짓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에 납품할 물량을 생산할 1공장은 현재 샘플 제작 단계까지 진행됐는데, 이 역시도 내년까지만 생산한 뒤 철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SK이노베이션이 10년간 미국 진출을 유예하게 되면 유럽과 중국 시장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옌청, 허이저우 등에 배터리 공장을 증설 중이며, 유럽에는 헝가리 이반차에 1조2,000억 원을 들여 30GWh 규모의 유럽 3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미국 사업 철수 시 미국 1공장에 들어간 설비들은 이 곳으로 이전될 전망이다.


배터리 사업·미국 특수성 감안… 시장서도 美보다 유럽 주목

SK이노베이션이 합의 대신 철수라는 극단적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배경엔 배터리 사업 및 미국의 특수성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유럽에서는 노스볼트를 비롯해 브리티시볼트(영국), 오토모티브셀(프랑스) 등 신흥 배터리 제조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배터리 산업 자체가 기술 장벽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SK이노베이션이 3조 원 이상의 합의금을 주고 미국 사업을 유지했을 때, 미국 내에서 이처럼 배터리 업체들이 늘어날 경우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에서 미국 노동자 60% 이상이 생산한 부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중국·유럽에 비해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은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경우 배터리 제조사가 내야 할 충당금이 한국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

실제로 미국의 배터리 사업 성장 속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도 낙관적이지 않다. 시장조사업체인 블룸버그NEF는 2030년 글로벌 배터리 생산 비중은 중국이 59%로 압도적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럽이 7%(2020년)에서 31%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6%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김경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