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울에 살아서 이 꼴을..." ①인물 ②정책 ③유권자 실종 '3無 선거'

입력
2021.04.07 13: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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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탕·페라가모 구두 둘러싼 공방만
네거티브·희화화 피해는 유권자의 몫

4·7 재·보궐선거 전날인 6일 박영선(왼쪽)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각각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인근 동화면세점과 노원구 상계백병원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전날인 6일 박영선(왼쪽)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각각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인근 동화면세점과 노원구 상계백병원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역대급 3무(無)' 선거였다. 후보, 정책, 시민은 실종된 채 네거티브만 남았기 때문이다. 여야는 투표 하루 전까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생태탕집 아들' 증언의 진위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공식 선거운동 내내 후보 능력을 부각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경쟁 대신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기에만 골몰했다. 그 과정에서 유권자인 시민은 철저히 소외됐다.

인물·정책 없이 '네거티브'만 난무

4·7 재·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과 제2의 도시인 부산에서 시장을 동시에 뽑는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관심이 컸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여야 대표선수인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선거운동 내내 네거티브전에 열중했다. 박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오 후보가 내곡동 토지 측량에 동행했는지, 당시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생태탕집에 들렀는지만을 파고들었다.

'내곡동 땅 의혹'이 커지는 동안 역설적으로 '박영선'이란 후보는 작아졌다. 4선 의원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출신의 '능력있는 여성 정치인'이란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오 후보는 여당의 파상공세에 '오락가락' 해명을 반복하면서 논란을 자초했고, '합리적 중도'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정책 경쟁은 증발됐다. 박 후보의 '21분 생활권 도시', 오 후보의 '균형발전 서울'이라는 야심찬 공약은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선거의 최대 이슈였던 '부동산 공약'도 세부 추진 방안에서 차이가 있을 뿐 두 후보 간 별다른 차별화 지점도 없었다. 5일 TV토론에서 박 후보가 공공주택 30만 호 공급과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공약을 설명하며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례를 거론하자, 오 후보가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후보는 "박원순 전 시장이 시작한 것"이라며 '소유권 다툼'까지 벌였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참석을 위해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 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참석을 위해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양당은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결정적 한방' 없이 변죽만 울려댔다. 이번 선거가 '정치 선거'로 변질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셈이다. 민주당은 내곡동 의혹을 고리로 오 후보의 사퇴 촉구만 반복했다. 국민의힘에선 박 후보 남편 소유의 '도쿄 아파트' 의혹으로 맞대응했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도 차별화한 이슈로 승리를 거둔 교훈은 뒷전이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정권심판론에 맞서 민주당이 '방역' '민생'으로 맞서 대승을 거둔 바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치러진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세월호 책임론을 내세웠으나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민생을 앞세워 선전한 사례가 있다.

'생태탕'만 부각된 희화화한 선거... 유권자만 손해

그러면서 선거는 점점 희화화했다. 여야는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6일까지 '내곡동 공방'을 벌였다. 박 후보는 과거 행사장에서 찍힌 오 후보의 사진을 두고 내곡동 땅 측량 때 신은 페라가모 구두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오 후보는 '국산 브랜드'라는 해명을 내놓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생태탕, 페라가모만 남긴 선거"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치에 대한 불신, 혐오를 키우는 선거"였다고 촌평했다. 이 교수는 "공약도 여야 구분이 모호했고, 거대 양당이 주도한 네거티브로 물든 비생산적인 선거로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만 꺾인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다. 사는 지역에 대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린 채 네거티브 공방으로 파묻힌 선거의 피해는 후보와 여야 정당이 아닌 결국 유권자 몫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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