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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로남불' 불허한 선관위, '땅투기 정치인'도 못쓰게 했다

입력
2021.04.05 18:36
수정
2021.04.05 19: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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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정당·후보 '유추' 문구도 과잉 규제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사전투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사전투표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①정직한 후보에게 투표합시다.

②낡은정치 청산하기 위해 4월 7일은 투표하는 날!

③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투표합시다.

④깨끗한 서울에 투표합시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개인이 4ㆍ7 재보궐선거 투표 독려를 위해 현수막이나 피켓에 쓰고 싶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법 여부를 문의한 문구들이다. 이중 선관위가 불허한 것은 무엇일까. 언뜻 보면 전부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선관위는 ④를 제외한 ①~③를 현행법 위반으로 봤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 현수막 부착 등 투표 독려 행위를 할 수 있게 허용하지만,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유추'할 수 있는 문구는 금지하기 때문이다.

①~③를 불허한 이유를 보자. ①은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거짓말을 한다’는 공세를 받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떠올리게 하므로 불허. ②는 민주당이 오 후보를 ‘낡은 시장’ ‘낡은 행정’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어 오 후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불허. ③은 기호 8번 오태양 후보가 속한 ‘미래당’이 떠오르기 때문에 불허.

특정 후보를 '유추'할 수 있는 문구까지 금지

5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선관위의 투표 독려 문구 판단 사례 모음에 따르면, 선관위는 비현실적이다 싶을 정도로 깐깐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선관위는 국민의힘이 문의한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 ‘투표가 위선을 이깁니다’ 등 문구 사용을 금지했다. '내로남불'과 '위선'이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는데,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민주당을 편파적으로 보호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민주당이 쓰겠다고 신고한 문구도 여럿 제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령 민주당은 ‘투표로 부산시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를 쓰겠다고 했지만, 선관위는 “‘지킨다’는 표현이 '정권 수호'로 해석돼 민주당을 찍을 것을 권유하는 표현”이라고 판단해 허용하지 않았다. 선관위는 또 "땅투기 정치인 투표로 심판하자" "4월 7일은 다시 촛불 시민의 저력을 보여주는 날"도 허용하지 않았다. 선관위가 민주당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보수 진영의 비판이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선관위는 '지킨다'는 표현이 현 정권 수호 의미로 유추된다며 사용을 불허했다. 선관위 제공

선관위는 '지킨다'는 표현이 현 정권 수호 의미로 유추된다며 사용을 불허했다. 선관위 제공

선관위는 ‘사전투표하고 일 해요!’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민주당 선거사무원 피켓 문구와 같다며 금지했다. 쓸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준이 엄격한데, 선거법이 투표 독려 문구에 쓸 수 없는 대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까지 폭넓게 포함하고 있어서다. '유추 가능 여부'를 따지려면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만큼, 과잉·편파 규제 시비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선관위는 지난해 4월 전체 위원회의를 열고 ‘순수한 투표 참여 권유 내용이 아닌 것은 전부 법 위반으로 본다’고 의결했다. 편파 시비에 휘말리느니, 과잉 규제를 택한 것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5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하고 있다. 과천=뉴시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5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하고 있다. 과천=뉴시스


선거철 마다 반복되는 편파성 논란

그럼에도 선거철마다 편파성 논란이 반복된다.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5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를 찾아 선관위가 민주당 편을 들어준다고 항의했다.

'투표'의 '투'를 다른 색깔로 강조해 기호 2번 국민의힘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사용이 불허된 투표 독려 피켓. 선관위 제공

'투표'의 '투'를 다른 색깔로 강조해 기호 2번 국민의힘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사용이 불허된 투표 독려 피켓. 선관위 제공

선관위도 할 말은 있다. 이런 편파성 시비의 원인을 없애려고 선관위는 2013,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투표 참여를 독려할 때 정당ㆍ후보 이름(유추 포함)을 쓰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을 고치자는 규제 완화 입법 의견을 국회에 냈다. 그러나 여야는 지금껏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4ㆍ7 보궐선거 이후 다시 국회에 의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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