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이 키우던 개인데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고. 내가 워낙 개를 좋아하기도 하고. 매일 가서 밥을 챙겨줬는데, 더 이상 하기가 어려워서 딸하고 사위한테 좀 도와달라 했지.
버들이 제보자 박금순 할머니
동물보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는 1월 경기 양평군에서 혼자 살던 한 남성이 이사 가면서 1년 6개월 동안 길러온 개를 버리고 갔다는 제보를 받았다. 동물유기는 2월부터 300만 원 이하 벌금형(기존 300만 원 이하 과태료 대상)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는 원래 보호자를 찾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개를 구조하기로 했다. 전 보호자가 또다시 개를 유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팔아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사 간다고 버려진 개, 외면 못한 이웃 할머니
경기 양평군에 사는 박금순(84)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매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웃집을 찾았다. 그 집에 살던 남성이 이사하면서 짧은 줄에 묶어 놓고 가버린 개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산책 한번 시키지 않고 묶어 기르는 개가 안쓰러웠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꼬리를 치며 반기는 개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개에게 버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가 버텨내길 바라며 하루에 한 번씩 밥을 챙겼다.
거동이 힘든 할머니가 언제까지 버들이의 밥을 챙겨줄 수는 없는 노릇. 동네 이웃들은 할머니에게 "버들이를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라"고 권했다. 하지만 믹스견인 버들이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에 들어가면 안락사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길 듣고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딸에게 사정을 전하며 버들이를 도울 방법을 고민하기로 했다.
순한 버들이, 1분도 안 돼 구조 끝
박 할머니 딸 부부는 다리가 부러진 개를 포함해 두 마리를 입양해 기르고 있어 버들이를 추가로 입양하기는 힘들었다. 이들은 대신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팅커벨프로젝트에 도움을 요청했고, 황 대표는 회원들의 동의를 받아 버들이를 구조하기로 했다. 팅커벨프로젝트는 개인 구조요청의 경우 일정 기간 이상 활동하며 정기후원하는 정회원 50명 이상의 동의가 있을 때 구조에 나선다. 모든 구조 요청을 다 받아들이기 힘들어 회원들이 구조 취지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나선다는 게 이들의 원칙이다.
1월 22일 오전 10시 시작된 버들이 구조는 다른 유기동물과 비교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순한 개라 처음 보는 황 대표에게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기 때문. 황 대표가 줄을 풀자마자 버들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에 안겼다.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짧은 줄에서 해방된 날이었다. 황 대표는 "구조라고 할 것도 없었다"며 "(버들이가) 이동장 안으로도 스스로 들어가 구조하는 데 1분도 안 걸렸다"고 말했다.
버들이 구조를 위해 뭉친 제보자와 회원들
황 대표는 버들이를 구조하자마자 협력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파보바이러스, 홍역 등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검사 결과 오래도록 밖에서 관리받지 못해 비쩍 마른 버들이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있었다. 실외에서 키우면서 예방약을 먹이지 않은 개들의 절반 이상은 심장사상충에 감염되는데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버들이는 심장사상충 초기 단계였는데 2개월 넘도록 치료를 받고서야 이달 초 완치됐다.
팅커벨프로젝트는 위탁시설에서 지내는 버들이의 심장사상충 치료가 끝난 만큼 이제부터 입양처를 본격적으로 찾아줄 예정이다. 황 대표는 "버들이처럼 남겨진 개들이 결국 떠돌이개가 되고, 이는 유기동물 증가로 이어진다"며 "남겨진 개를 외면하지 않은 할머니, 또 사연을 들은 딸 부부의 적극적인 활동에 회원들의 도움으로 개를 구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5년간 지자체 보호소 부동의 1위는 믹스견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전국 지방자치단체 보호소에 들어온 유실?유기동물 가운데 부동의 1위는 믹스(Mix)견이다. 지난해 기준 보호소에 들어온 믹스견은 7만1,798마리로 품종견 2만2,695마리보다 3배 많았다.
특히 어린 개체가 많고, 도농복합지역에서의 증가 추세가 두드러진 점을 감안하면 중성화시키지 않고 줄에 묶어 키우거나 방치하는 개들이 유기동물 증가의 주원인임을 알 수 있다. 재개발지역 등을 떠나면서, 이사하면서 기르던 개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황 대표는 "기르던 개를 버리는 행위 자체가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며 "지자체가 마당개를 보살피는 법에 대한 반려인 교육 강화, 마당개와 떠돌이개의 중성화 지원 등에 나서야 유기동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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