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적 실패 통해 간신히 찾은 정책퍼즐
여야 후보 ‘정책 전환’ 합창에 또 휘청
일관된 정책신호 유지하며 효과 지켜봐야
소크라테스는 악(惡)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정책 파탄은 적어도 무지와 무능의 결과가 얼마나 나쁜 결과를 낳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 기념비적 사례라 할 만하다. 이 사람들이라고 해서 일을 망치려고 작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을 모르는 무지와 정책퍼즐을 조합할 능력의 결여가 이들이 ‘사악한 세력’으로 몰아붙인 이전 정권에 비해서도 훨씬 나쁜 결과를 불렀다.
그래서일 것이다. 부동산정책 실패가 4ㆍ7 재·보선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 후보들까지 앞다퉈 정책 전환을 공약하며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기세라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기존 부동산정책은 적잖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돌고 돌아 가까스로 문제풀이의 궤도에 진입한 것 같은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화가 나도 당분간은 나름의 효과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본다.
이 정권의 부동산정책은 피를 흘리고 나서야 두들겨 맞았음을 깨닫는 ‘둔재의 학습과정’을 되풀이해 왔다. 자못 비장하게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으나, 정작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를 통해 다주택 투기에 불을 붙이는 치명적 실책을 저질렀다. 서울 부산 찍고 내륙의 지방 소도시까지 투기의 불길이 번진 지난해 7월에야 아파트 등록 임대사업을 폐지하고 특혜를 축소하는 일부 보완책을 마련했다.
수요 억제를 겨냥한 주택 보유세 강화도 줄곧 겉돌았다. 과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책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잇따랐지만 주택당국의 안일한 통계만 바라봤다. 그렇게 ‘헛발질’을 계속하다가 뭔가 잘못됐다 싶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내놓은 게 지난해 11월이다. 그나마도 납득할 만한 산정 기준조차 내지 못해 광범위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이 정권은 애초부터 주택 공급량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역시 비현실적 통계에만 근거한 오판이었다. 규제 일변도의 수요 억제 정책에 사실상 ‘올인’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 뒤늦게 3기 신도시를 거쳐 실수요에 부응하는 도심 주택공급책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급기야 지난 2월에는 이른바 ‘변창흠표 공급대책’까지 내놨지만, LH 임직원 3기 신도시 후보지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그나마도 추진이 불확실해졌다.
LH 투기 사건만 해도 그렇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재개발ㆍ재건축 투기는 1970년대 이래 부동산 투기의 상수였다. 대통령까지 ‘투기와의 전쟁’에 앞장섰으니 당연히 충분히 방비책을 가동했으려니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목소리만 높았던 거였다. 이제야 부랴부랴 전수조사니 소급 적용이니 악을 쓰며 법석을 떠는 상황이 됐다.
한심한 지경에도 부동산정책 전환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정권을 두둔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실패를 거쳐 보완된 정책들은 이 정권의 무지와 무능 때문에 빚어진 국민적 고통과 눈물을 대가로 힘겹게 얻게 된 나름의 해법들이다. 아둔한 정권이 진작에 퍼즐을 맞췄어야 할 정책조합의 틀을 이제야 구축했다고 해서, 아예 새로운 틀을 시도한다면 단언컨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누구는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폭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는 공공재개발ㆍ재건축 물 건너 갔으니 규제를 전면 완화해 민간재개발ㆍ재건축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2030 실수요를 위해 주택대출을 대폭 풀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로 정책기조 자체가 또다시 흔들리면 이 나라의 부동산정책은 죽도 밥도 아닌 ‘폭망’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모로 가든 기어 가든, 시장에 일관된 정책신호를 유지하는 게 가장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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