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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년 아시안계 혐오 3,800건...미국은 침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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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코로나19 공포가 엄습하던 작년 4월. 인스타그램의 ‘안티 아시안클럽 뉴욕’ 계정이 미국 뉴욕경찰에 비상을 걸었다.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아시아계 사람들을 총으로 쓸어버리겠다는 글이 올라온 때문이었다. 비록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 사건은 다가오는 아시안 혐오를 알리는 신호였다. 이후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은 아시안 증오로 번졌고, 주먹과 총이 되어 이들을 겨냥했다.
1년 뒤, 아시안들은 한 삽화 속 모녀에게서 자신들을 발견하고 있다. 주간지 뉴요커의 최근호(5일자) 표지에 실린 삽화에서,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아시안 모녀는 달아나기 쉽게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 또 손 잡은 모녀의 시선은 누군가를 경계하듯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일상이 된 아시안의 공포, 불안을 보여준 삽화에 SNS에선 슬픈 댓글과 공감이 잇따랐다.
지난 1년간 아시안들은 인종 혐오까지 더해진 코로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태국계 노인은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샌디에이고의 필리핀계 여성은 주먹 세례를 받았으며, 뉴욕의 한인은 머리채를 잡힌 채 구타당했다. 밖이 무서운 아시안 노인들은 백신접종도 꺼리고, 학생들은 원격 수업을 원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아시안 강사는 얻어맞고, 프랑스의 일본계 남성은 염산 공격을 받았으며, 호주의 아시안 혐오 범죄는 8배 넘게 증가했다.
북미 시민단체 ‘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춰라(Stop AAPA Hate)’에 따르면 코로나가 유행한 1년간 보고된 혐오사건은 약 3,800건에 이른다. 한국계(14.8%)는 중국계(42.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를 기록했다. 아시안 혐오는 칼부림, 구타에서 언어폭력, 최루가스 분사, 침뱉기, 집단 따돌림 등으로 나타났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3배나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하루 평균 10건이 넘는 이 같은 아시안 혐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 있다. 아시안은 침묵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 때문이다.
미 법무부가 1월에 공개한 인종별 범죄자 현황을 보면, 최대 피해자는 아시안이다. 2018년에 발생한 516만여 폭력 사건 가운데, 동일 인종 간 범죄는 백인이 62.1%, 흑인은 70.3%로 높았으나, 아시안은 24.1%에 불과했다. 뒤집어 보면 백인과 흑인은 다른 인종에 의한 폭력이 각기 37.9%, 29.7%로 낮은 데 반해 아시안은 무려 75.9%에 달하는 것이다. 아시안에게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는 주로 백인(24.1%)과 흑인(27.5%)이었다. 반면에 아시안이 가해자이고 피해자가 백인인 경우는 2.2%, 흑인은 0.1%, 히스패닉은 0.6%로 미미했다.
아시안이 최대 피해자인 현실은 손 쉬운 범죄 대상인 것도 큰 이유다. 더구나 범죄 피해를 입고도 신고하지 않는 경우는 아시안이 24.6%로 백인(12.2%), 흑인(18.0%) 등 타 인종에 비해 월등히 높다. 입증의 어려움과 언어 제약으로 사건이 증오범죄로 다뤄지는 사례는 더욱 줄어든다. 뉴욕경찰이 아시안 증오범죄가 2019년 3건에서 2020년 28으로 늘었고, 올 들어선 2년치를 합한 것보다 많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숫자가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미국 주류 사회는 아시안 혐오에 침묵해왔다. 심지어 아시안미국청년재단 보고에 따르면, 청년 아시안 4명 중 1명이 인종적 위협을 경험했는데, 그 중 절반은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방관 속에 이뤄졌다. 이 같은 침묵은 범죄자가 주로 흑인들이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백인 사회는 아시아계조차 흑인들을 범죄인화하는 것을 꺼리고, 아시안 단체들도 인종 간 갈등과 폭력을 부채질할까 우려해 사건화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아시안 혐오가 주목 받게 된 건 이유 없이 백인과 흑인의 공격을 받는 영상들이 공개되면서다. 뉴욕 지하철에서 촬영된 한 영상에선 아시아계 남성이 흑인에게 폭행당해 혼절했으나 그 때까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지난달 16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숨진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으나 인종 범죄가 아닌 성적 중독 사건으로 다뤄졌다. 경찰 대변인은 백인 남성 살인범이 그저 ‘나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치부했다.
이 같은 아시안 혐오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는 아시안을 공분케 하고 또 각성시키고 있다. 한 일본계 여성은 유튜브에 “(아시안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정당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했다. 제니퍼 리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 언론들이 아시안 혐오 폭력이 마치 ‘갑작스런’ 것인 양 다루지만 아시안에게는 어떤 일도 갑작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시안들 사이에선 이른바 가스라이팅(심리조작) 당했다는 반성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차별은 없다고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침묵하는 데도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경우도 침묵 속에 견제받지 않은 반아시안 감정이 표출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번 아시안 혐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극단화된 측면은 있다. 트럼프는 코로나 유행을 중국의 의도적인 테러로 규정하고 ‘우한 바이러스’ ‘쿵 바이러스’ ‘중국 바이러스’라고 끊임없이 비난했다. 코로나 확산을 막지 못하자 중국, 아시안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중국 음모론은 아시안까지 반미국적 사람들로 만들어 적의와 폭력의 위험지대로 몰고 갔다. 그러나 대만계인 애니 첸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시안 혐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은 부분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트럼프조차 아시안에 대한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인종 차별의 역사가 없었다면 이 같은 증오를 끌어내진 못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미국 주류 사회가 보기에 아시안은 조용히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며 순종적으로 동화되는 이상적인 소수 인종이다. 아시안은 특히 각종 정부의 혜택을 받아 ‘복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흑인들과 자주 대비된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망 직종인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종사자 1,900만 명은 백인(67%) 아시안(13%) 흑인(9%) 히스패닉(8%) 순의 분포를 보였다. 아시안은 전체 인구 비중(5.7%)의 2배를 넘었는데, 연봉 중간값에선 백인보다도 앞섰다. 미국 전체 가구별 중간 소득도 아시안은 백인보다 높고 흑인보다는 두 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아시안이 불만과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이 주도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인 상점들은 흑인 집단 거주지인 로스앤젤레스 중남부 지역과 코리아타운에서 집중적으로 약탈당했다. 아시안 사회는 가난한 히스패닉과 흑인들에게 쌓인 불만을 터뜨릴 편리한 피뢰침이었다고 미 사회비평가 마이크 데이비스는 지적했다. 백인, 대기업에 대한 불만, 자신들을 빈곤하게 만든 책임자에 대한 분노가 대리인 격인 아시안을 향해 표출됐고, 바로 눈앞의 한인 상점들이 약탈과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당시 분노는 코로나 여파 속에 다시 커져, 똑똑하고 부유한 아시안 혐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앤드류 해커는 ‘두 개의 나라’에서 백인들은 우월한 피와 유전자, 전통을 가졌다는 믿음이 허용되고, 흑인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방인, 비주류로 취급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을 두 개로 쪼개는, 사회적 분단인 인종 차별은 이제 흑백만의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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