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내로남불, 특정 정당 연상되니 쓰지 말라"는 선관위, 공정의 역설

입력
2021.04.05 01:00
3면
구독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로남불' 등의 표현을 투표 독려 현수막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정 정당을 반대하거나 해당 정당을 유추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선관위가 더불어민주당을 '내로남불 정당'으로 인정한 모양새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는 2일 '투표가 위선·무능·내로남불을 이깁니다'라는 문구를 4·7 재보궐선거 투표 독려 현수막에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문의한 국민의힘에 '사용 제한' 결정을 통보했다. 선관위는 "국민의힘이 위선·무능·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민주당을 심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며 "일반 선거인이 그 표현을 통해 특정 정당을 반대하거나 그 정당을 쉽게 유추할 수 있어 제한했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김예령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4일 "집권 여당인 민주당 수호가 지나쳐, 민주당을 위선?무능?내로남불 정당이라 인증한 선관위의 자승자박"이라고 꼬집었다.

선관위 결정의 근거는 공직선거법 90조다. 공직선거법 90조는 '성명·사진 또는 명칭·성명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명시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선관위의 해석에 대한 '고무줄 잣대' 논란은 반복돼 왔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 당색인 파란색과 유사한 색상을 쓴 '택시래핑' 선거 홍보물과 교통방송의 '#일(1)합시다' 캠페인에 대해선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려 중립성 시비를 불렀다.

여성단체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캠페인을 시작하자, 선관위는 선거법 90조를 이유로 불허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박원순 전 시장 성비위 사건을 떠올리게 해 투표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선관위는 이 단체에 '우리는 성평등한 서울을 원한다'는 문구는 허용하면서도 '나는 성평등·페미니즘에 투표한다'는 문구는 불허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번 재보궐선거 후 법안 개정 의견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2013년과 2016년 "과도한 규제로 유권자의 알 권리와 실질적 선택의 자유마저 제약되고 있다"며 선거법 90조 폐지를 제안하는 개정 의견을 낸 바 있다.

원다라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