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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냉동창고가 나았을까

입력
2021.04.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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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 강릉시 올림픽파크 내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 그러나 이 경기장은 폐막 이후 마땅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 강릉시 올림픽파크 내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 그러나 이 경기장은 폐막 이후 마땅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의 일이다. 국내 한 물류기업이 강원 강릉시에 자리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강릉오벌)을 평창올림픽 폐막 이후 냉동창고로 쓰고 싶다는 제안을 강원도에 했다. 얼음을 얼리고 유지하는 기능을 갖춘 실내 경기장을 손봐 동해안 수산물을 보관하고 유통하면 경제성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황당하지만 이색적인 제안에 제법 많은 언론이 관심을 나타냈다. 올림픽이 끝난 뒤 활용 방안이 마땅치 않을 바엔, 냉동창고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주장도 들렸다.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자는 접근이었다.

강원도의 반응은 차가웠다. '평창올림픽의 유산이 냉동오징어가 되면 어쩌냐', '감히 올림픽 유산에 이런 제안을 하다니' 등 공무원들의 목소리에선 불쾌감이 잔뜩 묻어 나왔다. 강원도는 이 업체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강릉오벌을 대형 컨벤션홀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만 했다. 이때만 해도 '뭔가 계획이 있는가' 싶었다. 적어도 그들이 거절한 냉동창고보다 많은 수익을 강원도에 안겨줄 구상을 밝힐 줄 알았다.

건립에 혈세 1,300억 원이 들어간 이 경기장은 지금 계륵 신세다. 국제회의와 화려한 공연이 열리기는커녕,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기장은 가끔 엘리트 선수들의 훈련장이나 영화 촬영장소로 사용될 뿐이지만 '올림픽 유산'이라며 떠받드는 통에 함부로 부숴버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강릉하키센터와 스켈레톤, 봅슬레이 경기가 열렸던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의 사정도 마찬가지. 지난해 이들 3곳 경기장의 적자는 32억 원에 이른다. 코로나19 변수가 없었던 2019년에도 35억 원이 넘는 손해를 봤으니, 코로나19 탓이라고 보긴 힘들다.

올림픽 이전부터 '이렇게 짓는 건 좋은데, 올림픽 끝나면 어디에 쓰냐'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강원도가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을 비롯한 국내외 대회 유치로 돌파구를 찾겠다고 했으니, 그전까지는 지금처럼 계속 세금을 부어가며 유지를 해야 한다. 대회를 유치한들 효과도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평창올림픽을 통해 일회성 행사의 제한적인 효과를 확인했다.

시설을 갖춘 곳에서 올림픽을 분산 개최하거나, 폐막 뒤 철거를 계획하고 경기장을 지을 수는 없었을까. 올림픽 후 철거를 염두에 뒀던 중국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 올림픽을 도심 재생과 연계했던 영국 런던 등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어야 한다. 영암 F1트랙과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 등 국내 실패 사례를 지켜보고도 비슷한 경로를 밟은 강원도 당국의 패착이 아쉽다.

강원도와 올림픽조직위, 중앙정부까지도 '세계적인 동계스포츠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희망을 띄웠을 뿐, 경기장의 사후 활용 계획을 살피는 데는 인색했다. 축제가 끝나자 '동계 스포츠의 성지' 운운했던 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원도는 최근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인 강릉오벌을 실내 드론 경기장으로 만들겠다며 정부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실내 드론 경기장에 대한 검증은 또 얼마나 혹독하게 거친 뒤 내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경기장과 시설을 마구 지은 대가를 국민의 세금으로 치르겠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은 아닐까. 차라리 오징어 냉동창고가 나았을지 모를 일이다.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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