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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의 차별, 우리 안의 차별

입력
2021.04.05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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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틀랜타 교외에서 백인 남성이 아시아 여성들을 살해한 범죄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탄식했지만, 이는 미국의 뿌리 깊은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정서가 전혀 규제되지 않은 총기 숭배 문화와 만나 일어난 아주 미국적인 범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 미국이다"라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하겠다. 물론 인종차별이 미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보다 더 긴 식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늘어나는 이민으로 급격하게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유럽의 상황이 미국보다 딱히 더 나아보이지 않는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곳에 대한 무지와 편견일지 모르지만 학회 등에서 만나는 유럽 학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무감함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물론 총기규제가 더 엄격한 그곳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인종적 혐오와 차별이 대량 학살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한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느끼는 차별의 경험이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고 일상에서 늘 겪는다는 사람도 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몇 가지 요인이 있는 듯하다. 우선 개인의 정체성이다. 처음 유학생으로 왔을 때는 이 나라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손님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나를 멀리서 온 이방인으로 대하는 태도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 산 지 20년이 넘고 여기에서 세금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지금은 별 악의 없이 던지는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도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미국의 지리적, 사회적 공간에서의 위치도 중요한 요인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진보적 성향이 강한 대도시에 산다고 차별이나 혐오 범죄의 대상에서 예외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백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백인의 공간'에서는 그들의 문화와 우월한 지위가 당연시되고 차별을 경험할 기회도 많아지게 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경우 소수인종과 경제적 약자라는 이중의 그늘 속에 더 많은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차별을 감지하는 감수성에도 차이가 있다.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인종적 적대감이야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일어나는 '미세 차별'은 가해자도 꼭 의식적으로 나쁜 마음을 품고 하는 것이 아니고 피해자도 긴가민가하다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소리 없이 옷깃을 적시는 안개비처럼 반복해서 노출되면 자기도 모르게 영혼을 잠식해 들어올 수 있는 게 미세 차별이다. 그런 모호한 차별적 행동에 이렇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그래서 의미가 있다. 반복되는 호명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무심코 일어나는 이 미세먼지 같은 차별을 알아보는 감수성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애틀랜타 사건 이후 한국 언론에서도 미주 한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고 또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도 우려와 지지를 보내주는 것이 많은 힘이 된다. 이에 감사하면서도 그 관심과 지지가 미국의 한인들보다 한국 사회의 이주자들과 소수자들에게 향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에 사는 친지와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낯선 얼굴의 이웃과 소수자들을 생각하고 혹시나 그들에게 무심코 차별의 시선과 언어로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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