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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대통령은 마지막 식사로 금단의 요리를 먹었다

입력
2021.04.03 09:30
수정
2021.04.04 18:37

<1>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만찬과 회색머리멧새 통구이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황홀한 불쾌감'을 선사하는 회색머리멧새 '오르톨랑' 구이는 개체 수 보존과 잔인한 조리 방법 때문에 1979년부터 금지된 요리였다. 미국드라마 '빌리언스' 캡처.

'황홀한 불쾌감'을 선사하는 회색머리멧새 '오르톨랑' 구이는 개체 수 보존과 잔인한 조리 방법 때문에 1979년부터 금지된 요리였다. 미국드라마 '빌리언스' 캡처.

‘괜찮을 때는 레몬, 나쁠 때는 과숙된 자몽이 배 속에 들어 앉은 것 같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자신의 종양을 시트러스에 비유했다. 종양 자체보다는 아무래도 고통의 크기에 대한 비유였으리라. 1995년 말, 연례행사인 이집트 순례길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은 나날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전립선에서 비롯된 암세포는 이미 뇌로 전이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미테랑은 프랑스로 돌아와 선언한다. 섣달 그믐날, 생애 최후의 만찬을 가지겠노라고.

가족과 지인 서른 명 정도가 초대받은 가운데, 미테랑 전 대통령은 손님과 별도의 식탁에서 혼자 식사했다. 메뉴는 어쩌면 프랑스 최상류층에게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일단 전채로 그가 좋아하는 프랑스 북서부 마렌 지방의 석화가 등장했다. 제 발로 걸어오지 못할 만큼 기력이 쇠잔해질 대로 쇠잔해진 상태였지만, 굴이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삶의 마지막 불꽃이 잠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 그는 죽어가는 이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기력을 발휘해 굴을 삼키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음식이 나오면 깨어났다가 먹고 다시 잠에 빠져들기를 되풀이하는 사이 코스는 푸아그라와 거세수탉을 지나 마지막 요리에 이르렀다. 최후의 만찬의, 최후의 요리는 바로 회색머리멧새(오르톨랑, Ortolan) 통구이였다. 오르톨랑이 가지런히 줄 지어 담긴 큰 접시를 서버가 들고 나오자 손님들 일부가 술렁였다. 미테랑은 이렇게 손님들이 드러내는 놀라움에 주의를 기울이다 못해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서버가 접시를 들고 식탁을 한 바퀴 돌았지만 모든 손님이 오르톨랑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한편 받아들인 이들은 흰 냅킨을 머리에 뒤집어써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손가락으로 오르톨랑을 집어 입에 넣었다. 미테랑도 와인을 길게 한 모금 마셔 입을 헹군 뒤 냅킨으로 얼굴을 가리고 새를 먹었다. 그렇게 프랑스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만찬이면서 식사가 막을 내렸다. 미테랑은 이후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다가 1996년 1월 8일 세상을 떴다.

오르톨랑은 길이 16㎝에 무게 30g의 작은 새다. 현재 유럽에는 3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오르톨랑은 길이 16㎝에 무게 30g의 작은 새다. 현재 유럽에는 30만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1996년 별세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별세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금지된 식재료 '오르톨랑'

죽어가는 사람의 최후의 만찬이었지만, 미테랑의 식사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오르톨랑이 금단의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개체가 심각하게 줄어 이미 1979년부터 소비가 법으로 금지된 식재료를 전 대통령이 먹다니. 요리가 등장하자 손님들이 술렁였고 일부가 거부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단 미테랑 대통령 같은 일부 최상류층만이 금단의 맛에 슬금슬금 혀를 들이대는 현실도 아니었다. 프랑스는 법으로 금지된 이후에도 20년 넘게 강력한 집행을 하지 않았으니 어둠의 경로로는 얼마든지 오르톨랑을 즐길 수 있었다. 한 마리에 대략 20만원 수준이니 금단의 식재료라는 명성에 비하면 가격도 너그러운 수준이었다.

도대체 오르톨랑이 뭐기에 이 난리를 치는 걸까? 요즘이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참새를 먹어왔던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듯 보일 수도 있다. 길이 16~17㎝에 무게는 30g을 밑도는, 그저 한 입 거리의 작은 새가 대체 뭐라고. 그러나 또 다른 프랑스의 미식 재료이자 역시 논란의 대상인 푸아그라처럼 오르톨랑도 동물 학대 수준의 과정을 거쳐 맛을 들인다. 다만 소비 자체가 명목상 금지돼 있다 보니 우리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일단 늦가을, 겨울을 나기 위해 유럽에서 북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오르톨랑을 그물이나 덫으로 잡는다. 그리고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새장이나 상자에 가두거나 심한 경우는 눈을 파내 버린다. 그럼 새는 밤이라 착각하고 기장을 폭식해 21일 동안 몸무게를 세 배까지 불린다. 어찌 보면 거위(혹은 오리)를 강제 급식시켜 비대해진 간을 얻는 푸아그라 이상으로 끔찍한데 그저 시작일 뿐이다. 오르톨랑의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 브랜디의 일종인 아르마냑(armagnac)에 산 채 담가 익사시키는 한편 재워 맛도 들인다. 새 조리법치고 한자성어 ‘일석이조’가 몬도가네식으로 너무 잘 들어맞아 기이할 지경이다. 그리고는 털을 뽑아 8분간 통으로 구우면 금단의 요리가 완성된다.

애초에 소비가 불법인 식재료를 포획해 비육, 조리에 이르는 과정이 사이좋게 끔찍하므로 먹는 이들도 의식한다.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있구나. 그래서 미테랑의 만찬에서 그랬듯 오르톨랑은 식탁보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린 채로 먹는다. 그러나 미식 종주국이라는 프랑스인들이 실리도 없이 번거로움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이유가 없다. 조금 더 뜯어보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머리부터 얼굴까지 완벽하게 가려줌으로써 증발하는 아르마냑과 어우러진 오르토랑 통구이의 향을 한 오라기도 놓치지 않고 즐긴다는 계산이다.

오르톨랑 구이를 먹을 때는 흰 냅킨을 머리에 뒤집어써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손가락으로 집어 한번에 먹는다. '빌리언스' 캡처.

오르톨랑 구이를 먹을 때는 흰 냅킨을 머리에 뒤집어써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손가락으로 집어 한번에 먹는다. '빌리언스' 캡처.


오르톨랑의 맛은 '황홀한 불쾌감'

도대체 맛이 어떻기에 이 난리를 치는 걸까? 2018년 세상을 떠난 셰프이자 작가 토니 보댕의 글이 먹어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가장 사치스러운 말의 잔치로 남아 있다. “어금니로 오르톨랑의 흉곽을 지그시 누르자 와그작, 소리가 나며 타는 듯한 지방과 내장의 흐름이 목구멍을 뜨거운 은혜처럼 훑고 내려갔다. 이처럼 고통과 기쁨이 잘 어우러진 경험은 처음 겪어 본다. 숨을 절제하며 짧게 몰아 쉬며 천천히, 가능한 한 아주 천천히 오르톨랑을 계속 씹자 황홀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씹을 때마다 가는 뼈와 지방의 켜, 살코기, 껍질, 내장이 함께 뭉개지며 다양하고 경이로운 고대의 맛이 절묘하게 쏟아져 내렸다. 무화과, 아르마냑, 색이 짙은 살점에 날카로운 뼈에 찔린 입천장에서 배어 나온 피의 찝찔함이 살짝 섞인 맛이었다. 몸통을 씹어 삼키는 동안 입술에 매달려 있던 대가리와 부리를 쏙, 빨아들여서는 두개골을 사정없이 뭉갰다.”

맛의 묘사치고 너무 구구절절하다면 오르톨랑의 지방에서는 헤이즐넛 맛이 난다거나, 만찬의 끝에서 봉봉(bonbon, 술이 들어 있는 초콜릿)처럼 즐긴다는 사실 정도를 기억해 두자. 그런데 보댕은 어떻게 원산지인 유럽에서 금지된 새를 먹을 수 있었을까? 밀수 덕분이었다. 앞서 살펴 보았듯, 오르톨랑의 포획 및 소비는 엄격하게 통제되지 않는다. 동물보호단체가 나설 정도지만 심지어 포획철에 현장에서 신고를 해도 경찰은 아무도 체포하지 않는다는 증언도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금지된 식재료가 대서양을 건너 미대륙까지 진출한 뒤, 개인 고용 요리사의 손을 거쳐 상류층이나 미식가의 비밀 모임에서 소비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만 하는 걸까? 오르톨랑을 예찬하고 소비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푸아그라에 쓰이는 것과 같은 논리를 펼친다. 음식은 문화의 중요한 가지이니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식재료나 요리를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르톨랑은 심지어 고대 로마 시대에도 비밀 모임을 통해 소비됐다고 하니 일리가 아예 없지는 않다. 이제는 원로라 할 수 있는 미쉐린 별 셋 셰프 미셸 게라르나 알랭 뒤카스가 오르톨랑 요리의 전통을 프랑스의 레스토랑에 부활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인간이 모든 음식을 단지 생존을 위해 먹지만은 않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씩 전통을 지워 나간다면 결국 즐거움의 개념조차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정부에 1년 가운데 단 일주일 만이라도 레스토랑에서 오르톨랑을 낼 수 있도록 청원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7~2007년에 오르톨랑의 개체가 30%나 줄었으므로 프랑스 정부도 법 준수 강화를 위해 벌금의 액수를 높이는 등으로 노력 중이다. 그래서 오르톨랑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걸까? 세계자연보전연맹의 기준 3.1에 의하면 오르톨랑은 멸종 위험이 낮고 위험 범주에 도달하지 않은 최하위 관심 대상(Least Concern)으로 분류된다. 현재 유럽에는 30만 마리의 오르톨랑이 서식하고 있다.


미드에 등장하는 오르톨랑

입에 넣고 싶지는 않지만 오르톨랑을 먹는 분위기가 대체 어떤지 궁금하다고? 1. 먹는 과정에 밀교 의식 같은 절차가 딸려 있는데다 2. 토니 보댕의 말처럼 자신의 피를 흘려가며 3. 대가리와 부리까지 통째로 먹기 때문에 오르톨랑은 드라마나 영화에 분위기 메이커로 종종 등장한다. 가장 최근의 예가 현재 시즌5 중반까지 방영된 ‘빌리언스(Billions)’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실제 맨해튼의 유명 셰프들이 바비 액슬로드(대미언 루이스 분)에게 요리를 해주는 역할로 종종 등장하는데, 오르톨랑은 시즌 3의 6화 ‘세 번째 오르톨랑’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다. 실험적인 레스토랑(WD~50)을 통해 미국 현대 요리 선구자의 역할을 해온 와일리 뒤프렌이 요리와 출연을 맡았다. 한편 ‘한니발’의 시즌2 11화 ‘코 노 모노’에서도 역시 오르톨랑이 등장한다. 모사를 맡은 푸드 스타일스트 재니스 푼의 블로그에 의하면 드라마의 새는 아몬드가루에 설탕을 섞은 ‘마지판(marzipan)’으로 빚었다고 한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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