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도 고개 숙였다…역대 선거 '읍소전략 타율' 따져 보니

입력
2021.04.01 10: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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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보궐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 보궐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호소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국민 여러분께 간절히 사죄드린다. 화가 풀릴 때까지 반성하고 혁신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보궐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 3월 31일)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 다시 한번 민주당에 기회를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1일)

민주당 보궐선거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인 이낙연 전 대표와 김태년 대표 대행이 연이틀 고개를 숙였다. “정부ㆍ여당이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이 전 대표)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면서다. “내로남불 자세를 혁파하겠다”(김 대표 대행)고도 약속했다. 가라앉지 않는 부동산 분노 탓에 민주당에 불리한 서울과 부산시장 보선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자,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읍소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꼭 1년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집어 들었던 카드다.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는 21대 총선을 일주일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전국에서 나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죽을 각오로 뛰는 저희 후보들을 부디 도와주길 바란다”며 신발을 벗고 유권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읍소전략은 과거 주요 선거 때마다 국면 전환을 위해 여야 정당이 꺼내든 카드다. 하지만 결과는 그때마다 달랐다. 다만 관통하는 법칙은 있었다. 읍소전략은 지지율 흐름에 올라탈 뿐, 판세 자체를 뒤집지는 못했다.

2004년 3월 24일 박근혜 대표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한나라당이 천막으로 당사를 옮긴 뒤 박근혜 대표가 국민들에게 사과와 다짐을 말하고 있다. 이종철 기자

2004년 3월 24일 박근혜 대표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한나라당이 천막으로 당사를 옮긴 뒤 박근혜 대표가 국민들에게 사과와 다짐을 말하고 있다. 이종철 기자


읍소 등장한 장면 셋, 결과는 달랐다

①2004년 17대 총선= '읍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첫 선거는 17대 총선을 꼽는 이들이 많다. 국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치러진 선거로 ‘탄핵 선거’로도 불렸다. 당시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무려 70%에 달하는 탄핵 반대 여론의 역풍을 그대로 맞았다. 총선(4월 15일) 약 3주 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17.6%로 열린우리당(40.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당시 당권을 잡은 박 전 대통령은 당사를 천막당사로 옮기고 국민들에게 사죄의 절을 했다. “한나라당의 잘못에 대해 철저히 사죄하고 거듭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108배까지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의 호소에 힘입어 당은 전통적 강세 지역인 대구ㆍ경북(TK)을 중심으로 무섭게 지지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애초 개헌저지선(100석)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던 한나라당은 결과적으로 121석까지 확보했다. 당시 언론은 “비영남지역의 대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지만, ‘박근혜 바람’은 접전지역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고 평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던 김무성 대표가 부산 영도구 봉래교차로에서 1인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던 김무성 대표가 부산 영도구 봉래교차로에서 1인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2014년 6회 지방선거= 2014년 치러진 6월 지방선거 역시 한나라당에서 옷을 갈아입은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엔 위기였다. 두 달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 정부 대응에 대한 분노가 정국을 뒤덮어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선 이후 처음으로 새누리당 지지율이 30%대로 주저앉았다.

민심을 다잡지 못하면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등 주요 광역단체장을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새누리당을 거리로 불러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 등은 서울역광장에서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한 사과의 뜻을 담아 큰절을 올렸다. 김무성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 윤상현 의원 등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등 문구가 적힌 팻말을 내걸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9대 8. 새누리당이 8석을 지키며 선방했다. 여론조사상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던 경기, 인천, 부산을 모두 지켜낸 결과였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서울 종로 국회의원 후보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해 4월 14일 보신각 앞에서 연 대국민기자회견에서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미래통합당 서울 종로 국회의원 후보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해 4월 14일 보신각 앞에서 연 대국민기자회견에서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2020년 20대 총선=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 촉발된 2016년 이후 통합당의 지지율은 한 번도 민주당을 앞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형준 당시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선거 2주 전까지 “문재인 정부 심판 바람이 불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125석 이상 확보’를 공언했다.

하지만 4월 15일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말을 바꿨다. 유권자들을 향해 “마지막 주말에 자체 판세 분석을 해보니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여당이 얘기하는 180석 확보를 저지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지층 견제 심리를 자극하려는 마지막 호소였지만, 우려했던 민주당의 180석 확보는 현실이 됐다. 완전히 기울어진 지형에서는 읍소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다.

지지층 결집에만 효과… 보선에선 ‘한방’ 될까

이런 전례에 비춰보면 '읍소'는 지지층 결집을 통해,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 선거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는 전략으로까지 통할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상대 진영 지지층이나 중도층까지 끌어와 선거 결과 전체를 뒤바꾼 경우는 없다. 이번 보선 여론조사상 서울과 부산시장 여야 후보들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막판 읍소전략이 여당이 내심 바라는 ‘역전’까지 끌고 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만 평일에 치러지는 보궐선거 특성상, 총선이나 지방선거보다 투표율이 낮아 지지층 결집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조직'의 우위를 자신하는 민주당이 이변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우리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지 않는다고 한다. 숨은 표가 많다는 얘기”라며 “이들의 마음을 풀어줘 투표장으로 불러 모은다면 보선에서 승산이 없지 않다”고 기대했다.

이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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