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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의 모든 수난을 생각하며

입력
2021.03.31 20:00
25면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한 교회에 새겨진 19세기 프레스코화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 ⓒ게티이미지뱅크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한 교회에 새겨진 19세기 프레스코화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 ⓒ게티이미지뱅크

예수는 살이 찢기고 탈진에 허덕였으며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엄습에 조금씩 무릎을 꿇어야 했다. 예수는 인간 대신 죗값을 치르는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신이지만 동시에 완벽한 인간이어야 한다. 반신반인이어도 안 된다. 인간의 모든 고통을 완벽히 인간처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시에 찔리면 아프기 때문에 가시 면류관을 썼고, 채찍에 살이 뜯기면 쓰라리기에 채찍을 맞았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육체적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정신적 고통 중 하나는 ‘왕따’라고 한다. 소외의 상처는 평생 사람을 가장 무섭게 짓누르는 심리적 장애가 된다. 예수는 이 왕따를 겪으며 자랐을 것이다. 출생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있었다. 부모가 혼전임신을 하여 멀리 도망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익숙해야 했다. 예수는 이상하게 서른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다. 이십대 전에 결혼하는 것이 당시 상식이니 그는 주변의 별스러운 시선도 견뎌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신을 통하지 않고선 하나님께 갈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정통 유대교 측면에서 보자면 참람한 소리였다. 아마도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의 뒷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의 기이한 기질은 얼마 전 참수를 당한 또 다른 기인과 닮았다. 옷은 대강 걸치고 사막에 살면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소릴 지르던 침례 요한인데, 알고 보니 예수는 그와 친척이었다. 그에게 침례를 받은 걸 보니 아마 후계자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멸시를 당하기 딱 적합했다.

배경 또한 초라했다. 가문도 학벌도 없는 시골 목수의 아들이었다. 같이 몰려다니던 열댓 명의 추종자들이 있었는데 그 구성이 가관이다. 냄새나는 어부에 매국노 세리에 또 몇 여자들이 있었으니 건전한 조직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괘씸하게도 사회 지도자들을 어지간히 욕하며 돌아다녔다. 그래서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계층의 민심은 꽤 얻었다. 예수의 돌발 행동에 가장 당황했던 건 가족과 이웃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같이 코 흘리며 놀던 큰형이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선지자가 자신의 고향에선 환영받지 못한다며 그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이사야서의 예언에 따르면 예수는 외모가 볼품없다. 다행히 예수는 못생긴 사람들의 고통도 경험했다. 사랑의 아픔은 알까? 교리상 완벽한 인간이기에 우리와 똑같은 연정과 성욕도 지녔을 것이다. 다만 사명을 위해 그것을 표현도 누리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예수는 인간의 아픔을 정말로 다 알았을까? 남자이기에 여자의 고통은 알까? 매 맞고 죽었지 굶어 죽는 고통은? 물론 나의 우매한 상상이다. 모든 고통을 종류별로 겪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의 심도에 있는 것이리라.

특히 주목이 가는 건 예수의 마지막 절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는 절규다. 시편을 인용한 건데, 십자가에서 갑자기 성서 암송을? 신이기도 한 예수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고통의 정점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위기는 사실 징조가 있었다. 어느 날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그는 고통의 기도를 하늘의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 아버지는 할 수 있으니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는 너무 무서웠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는 했지만, 결국 십자가에 박혀 매달렸을 때 그는 버림받았다고 울었다. 자기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상처를 예수는 겪어야 했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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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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