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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내로남불' 타오를라...문 대통령, 김상조 단호히 잘랐다

입력
2021.03.29 21:13
수정
2021.03.29 22:3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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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돈 없어 보증금 14% 올렸다더니 예금통장엔 14억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퇴임 인사를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가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퇴임 인사를 마친 뒤 연단에서 내려가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전격 교체됐다. 청와대는 '본인이 강력히 물러나길 원했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 전 실장이 사의를 밝히자마자 수용하고,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즉각 후임으로 임명하며 '김 전 실장이 불명예 퇴진한다'는 신호를 분명히 줬다.

돌연 이뤄진 인사의 1차적 원인은 '청와대 정책사령탑인 김 전 실장이 지난해 자신이 입법에 깊숙이 관여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틀 전 전셋값을 올렸다'는 데 있다. 개정 임대차법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셋값 인상 상한을 5%로 규정했는데, 김 전 실장은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14%를 올렸다. 불법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고위 인사들의 '부동산 표리부동' '도덕성 내로남불'에 분개한 민심을 자극했다.

문 대통령의 이례적 문책성 인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서 탈출하는 데 방해되는 요인을 신속히 정리한 차원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9일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부동산 부패 청산이 반부패 정책의 최우선 과제임을 천명한다"고 했는데, '부동산 잡음' 한복판에 선 참모를 그대로 둬서는 대책이 탄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김상조(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 후임으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을 임명했다.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김 전 실장이 이호승 신임 실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김상조(오른쪽) 청와대 정책실장 후임으로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을 임명했다. 이날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김 전 실장이 이호승 신임 실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부동산 잡는다"던 김상조, 부동산 때문에 낙마 '아이러니'

김상조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공정거래위원장에 기용됐다가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 부침에도 1년 9개월 간 자리를 지키며 '문재인 정부 최장수 정책실장' 기록을 세웠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여러 자리에서 자신했던 그는 본인 부동산 문제로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논란은 28일 터졌다. '김 전 실장이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청남동 아파트 세입자와 전셋값 14.1%(8억 5,000만원에서 9억 7000만원으로)를 올려 받기로 계약을 갱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개정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김 전 실장은 '내가 전세 사는 아파트 보증금을 올려줘야 해서 불가피하게 올렸다'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그의 예금이 14억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고위 공직자가 사익 추구에 연연했다'는 것에 민심은 격분했다. 무엇보다 전ㆍ월세 상한제 입안을 주도했던 장본인이 법 시행 전 보증금을 1억 2,000만원이나 올린 것은 표리부동의 전형으로 비쳤다. 문 대통령이 "임차인의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지난해 8월 수석ㆍ보좌관회의)던 법의 취지도 훼손됐다.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 쓰여져 있다. 뉴스1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 쓰여져 있다. 뉴스1


'빠른 손절'한 靑… 김상조 "죄송하다"

김 전 실장은 반나절 만인 29일 오전 사의를 밝혔고, 문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후임자도 바로 임명했다. 첫 보도부터 후임자 임명까지 약 17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른 손절'은 문 대통령이 상황을 그만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 대통령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과 정권 도덕성에 대한 의심으로 번진 상황에서 '내로남불' 논란에 휩싸인 참모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특히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당일 터진 청와대 참모의 부동산 논란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훼손할 우려가 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민심이 심각한데 (김 전 실장 논란이) 국민에게 불신을 줄 수 있었다"고 답했다. 김 전 실장도 퇴임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엄중한 시점에 크나큰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2ㆍ4 주택 공급 대책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빨리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비서로서의 마지막 역할"이라고도 했다.

이호승 신임 정책실장은 현 정부에서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을 거쳤다. 2019년 10월 청와대 비서관 시절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데 대해 “자동차 산업도 자율주행차 쪽으로 발전하면서 기성 산업의 개념과는 전혀 달라지고 있고, 차 개념은 구글이나 애플이 만들고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로공사 톨게이트 노조의 (농성도 있었지만)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나”라고 말해 노동계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이호승(가운데) 신임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호승(가운데) 신임 정책실장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與도 '환영'한 경질… 野 '꼬리 자르기' 공세

더불어민주당은 김 전 실장 교체를 환영했다. '부동산 논란이 터지면, 최측근 참모라도 즉각 바꾼다'는 신호가 'LH 블랙홀' 정국 탈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보도 직후부터 '김 전 실장 거취 문제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내에) 많았다"며 "앞으로 정부ㆍ여당은 지위 고하, 정치적 유ㆍ불리를 떠나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공세를 이어갔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부동산 악재가 4ㆍ7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재빨리 경질한 것'이라며 "선거가 없으면 버티기, 선거가 있으면 꼬리 자르기인가"라고 몰아붙였다. 김 전 실장에 대해서도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29일 협의회에서 '국민 분노'를 '부동산 부패 척결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다. "야단 맞을 것은 맞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이다. 그러나 민심이 회복될 지는 미지수다. 김 전 실장의 불명예 퇴진은 공개적으로는 '투기와의 전쟁'을 외치며 '개인으로서의 이득'을 취해 온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부동산 투기 근절 의지와 관련 정책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 시절 재건출 호재를 기대하고 서울 흑석동 건물을 26억원을 주고 샀다는 것이 알려지며 물러났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참모 다주택 처분' 지시를 내린 당사자이면서도 2주택 중 충북 청주 아파트를 팔고, 서울 반포 아파트를 남기면서 '똘똘한 강남 한 채' 논란을 남겼다.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다주택자였지만 끝내 처분하지 않고 청와대를 떠나며 '직 대신 집'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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