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고름은 짜내야 한다

입력
2021.03.30 04:30
수정
2021.03.30 13:49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2일 국내 주요 게임업체 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데, 이런 부정적 인식이 국내 게임산업 전반으로 확산될까 우려스럽다"며 “지금이라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이용자의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2일 국내 주요 게임업체 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데, 이런 부정적 인식이 국내 게임산업 전반으로 확산될까 우려스럽다"며 “지금이라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이용자의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자업자득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밍기적거리면서 불신만 키웠다. 스스로 혼란을 초래한 꼴이다. 요즘 시끄러운 인터넷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말 그대로 비용을 지불하면 확률에 따라 얻을 수도 있지만 돈만 날릴 수도 있는 인터넷 게임 속 유료 상품이다.

문제는 최근 밝혀진 이 아이템의 속성에서부터 불거졌다. 18년 전 출시된 넥슨의 국민 게임 ‘메이플스토리’ 내에서 운영된 일부 확률형 아이템의 경우, 애초부터 당첨 확률 자체가 ‘제로(0)’로 설정됐단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다시 말해 특정 성능의 아이템은 아무리 돈을 써봤자, 가질 수 없었단 얘기다. 1등은 아예 없는 로또복권을 만들고 팔아온 행태와 다를 게 없다. ‘자율규제’를 주장해 온 게임업계에 대한 믿음이 이용자들에겐 배신감으로 돌아온 셈이다. 격분한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은 이달 초 경기 분당의 넥슨 본사 앞에서 트럭시위까지 벌였다. 이에 대해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선 “어차피 살 수도 없는 아이템을 만들어 놓고 회원들에게 돈만 쓰게 만든 거나 똑 같은 게 아니냐”라며 “이것은 사기”라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넥슨 측을 향한 이용자들의 분노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도 이어졌다. 국내 1위 게임 업체인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누적 이용자는 1,800만 명에 달한다. 여론에 떠밀린 넥슨이 뒤늦게 사과와 함께 자사 주요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률을 공개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확률형 아이템은 단지 넥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내 게임업계 간판인 넷마블과 엔씨소프트 등에도 의심의 눈초리는 더해진다. 게임 내 모든 확률형 아이템의 100% 투명한 공개에 대해선 미온적이어서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지적은 이미 2016년에도 제기됐다. 당시 확률형 아이템이 도마에 오르자, 당황한 게임업계에선 산업 발전을 내세우면서 자율규제로 고쳐 나가겠다며 시간부터 벌었다. 하지만 업계는 이후에도 ‘영업비밀’이란 명분하에,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6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화를 키워낸 원인이다.

부정적 여론에 정치권도 분주하다. 지난해 12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기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24일 여야 의원 18명과 함께 ‘확률조작 국민감시법’까지 공동 발의했다.

인터넷 게임은 혁신을 기반으로 온라인상에서 자리한 문화 아이콘이다. 무엇보다 “가장 혁신적으로 변해야 될 게임업계가 폐쇄적 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돈벌이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게 현재 누리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확률형 아이템은 전체 매출의 80~90%를 차지할 만큼, 게임업계엔 절대적이다. 지난해 국내 주요 게임업체 매출을 살펴보면 넥슨은 3조1,306억 원을, 넷마블은 2조4,848억 원을, 엔씨소프트는 2조4,162억 원을 각각 가져갔다. 3사 모두 사상 최대치다.

이 와중에 전해진 게임업계의 억대 연봉 시대 진입 소식에선 상대적 박탈감만 쌓여간다. 게임업계를 향해 던져진 “이용자들을 속이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연봉만 올려대는 게 아니냐”라는 세간의 따가운 질책은 당연하다. 썩은 고름은 짜내야 한다. 그래야 새살이 돋는다.

허재경 산업1팀장

허재경 산업1팀장



허재경 산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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