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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나"

입력
2021.03.29 18:00
26면


청와대 정책실장의 낙마, 부동산 ‘내로남불’
여론조사 밀리자 ‘샤이 진보’ 호소하는 여당
투표장 나오라기 전에 처절한 반성이 먼저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제7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선거 때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하는 말이 있었다. 정체성을 보수라고 밝히기 부끄러워하는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이른바 ‘샤이 보수’ 존재론이다. 여론조사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숨은 ‘샤이 보수’ 때문이라고 하고, 이들이 투표장에 대거 몰려나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년이 지나 똑같은 말이 이번엔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왔다.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다소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숨은 ‘샤이 진보’가 있어 실제 투표 결과는 다를 것”이라고 한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해찬 전 대표가 “여론조사는 틀렸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샤이 진보’ 응답이 반영되지 않은 여론조사는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이들이 투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샤이 진보’가 있는 건 맞는데 이들이 투표에 적극 응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다. 요즘 주변에선 “진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은 보수 지지자들이 탄핵 국면이 되자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라고 외쳤듯이 지금 진보 진영에서도 같은 분노를 터뜨린다.

민주당도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사실상 조직 총동원령을 내린 상태다. 국민의힘에 비해 조직은 확실히 앞서 있으니 국회의원과 지자체 의원들을 동원해 투표 독려 활동을 벌이도록 한 것이다.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의 특성을 감안해 결국 지지층을 얼마나 많이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느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본말이 전도됐다. 투표장에 나오라고 독려하기에 앞서 낙담하고 실망한 지지층의 마음을 돌려놓는 게 먼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최저치를 경신한 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날로 치솟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권심판론이 정부지원론을 압도하는 원인이 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 왜 지지자들과 중도층이 등을 돌렸는지 처절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과정이 빠졌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사람이 ‘임대차 3법’ 시행을 이틀 앞두고 자신의 강남아파트 전셋값을 대폭 올려 받은 사실은 왜 지지층이 이 정부를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선 정책실장은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자신은 엄청난 시세 차익을 얻었고, 전전 정책실장은 “부동산은 끝났다”면서도 집값은 다락같이 올려놨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180석 압승을 거둔 뒤 과거 열린우리당 때 강경 노선으로 당을 좌초시킨 ‘108번뇌’를 잊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얼마 안 가 휴지 조각이 됐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민생을 챙기기는커녕 여전히 ‘이념’과 ‘적폐’에 머물렀다. 지금 민주당 내 스피커는 모두 친문 강경 세력이 독차지하고 있다. 주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으나 극성 지지층의 비난에 시달리다 탈당하거나 위축돼 있다.

그동안 여권의 든든한 버팀목은 ‘20~40대와 여성, 호남’이었다. 하지만 젊은층은 ‘조국 사태’ ‘LH 투기’ 등 공정 가치 훼손으로, 여성은 박원순ㆍ오거돈 성추행으로, 호남은 능력에 대한 실망감으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존재한다고 확신했지만 그런 지지층은 없다는 게 박근혜 정권 때 확인된 바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여권을 찍은 지지자들은 깊은 허탈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혀있다.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못하면 이번 보궐선거가 아니라 내년 대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권은 지지자들이 내리치는 회초리를 기꺼이 맞아야 한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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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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