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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거지 사건과 라이더가 살아가는 법

입력
2021.03.29 22:00
27면
비 내리는 서울 도심에서 배달 중인 라이더 모습. 뉴스1

비 내리는 서울 도심에서 배달 중인 라이더 모습. 뉴스1

‘띠로링~’ 라이더가 사용하는 쿠팡이츠 프로그램이 배달을 가겠냐고 묻는다. 익숙한 가게라 본능적으로 수락을 눌렀다. 최종 목적지는 모른다. 가게에서 음식을 받고 휴대폰에서 픽업 버튼을 눌러야 손님 주소가 정확히 뜬다. 픽업을 누를 때는 복권이라도 긁듯이 가슴을 졸인다. 쿠팡은 5~6㎞ 떨어진 장거리 배달을 자주 보내 유배 배달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는 동네로 보내면 마음이 급해진다. 입구를 찾기 힘든 주상복합이나, 대형 아파트가 떠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 운 좋게 자주 배달 가던 호텔이었다.

배달하면서 호텔과 모텔을 구분하는 기준이 생겼다. 프런트에서 손님이 내려오게 하면 호텔, 라이더가 자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으면 모텔이다. 배정받은 주소지는 라이더가 로비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호텔이다. 손님이 조금이라도 빨리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교차로 신호에 걸렸을 때 전화를 걸었다. 손님은 받지 않았다. 이럴 땐 짜증이 올라온다. 손님에 대한 선의는, 연락이 닿지 않아 다음 배달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었다. 도착해서 계속 전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때부턴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돈이 흐르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음식을 함부로 처리했다가는 되레 라이더가 음식값을 물어야 한다. 최근 일명 ‘쿠팡거지’ 사건이 터졌다. 손님이 일부러 잘못된 주소로 비대면 배달을 시킨다. 손님은 음식을 받지 못했다며 쿠팡이츠에 환불을 요구한다. 쿠팡이츠는 라이더에게 배달을 제대로 했냐고 묻는다. 라이더는 정확하게 배달을 했다며 항의하지만 쿠팡은 증거를 내놓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은 라이더는 환불해주겠다고 한 후, 자신이 배달한 곳을 다시 찾아가 음식을 회수하려 했다. 음식은 없었다. 라이더가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CCTV엔 애초에 잘못된 주소로 배달을 시켰던 손님이 음식을 가져가고 있었다. 쿠팡거지라 불리는 사람의 명백한 범죄행위지만, 라이더들 사이엔 노동자를 믿지도 보호하지도 않은 회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졌다.

이 사건 이후 무조건 사진을 찍고 녹음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녹음을 누르고, 호텔 직원에게 올라가도 되냐고 물었다. 안 된다는 답을 고객센터 직원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호텔에 왔다는 증거 사진을 두 장 찍고, 마지막으로 손님에게 다시 문자를 남기고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다. 음식은 알아서 폐기하라는 쿠팡 측의 답변을 녹음했다. 남은 음식을 당장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어 오토바이에 싣고 일 해야만 했다.

1시간 정도 지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손님은 내 번호를 알지만 라이더는 손님의 안심번호만 안다. 불안했다. ‘쿠팡이츠에 문의하세요’라는 말을 몇 번 연습한 다음 전화를 받았다. 손님이다. 당황해하긴 했지만 다행히 화를 내지는 않았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찍어놓은 사진이 잘 있는지 재빨리 확인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손님의 슬픔에 공감하기보다는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사는 이유는 인성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던 삶의 경험 때문 아닐까. 모든 책임을 라이더에게 넘기는 특고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쿠팡거지나 배달 갑질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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