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인권 때리기’ 다음은 ‘서방식 일대일로’ 新 경제동맹

입력
2021.03.29 05:00
수정
2021.03.29 05:1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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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일대일로 맞서는 美 서방식 일대일로 구상
中은 이란과 25년 협정으로 중동 교두보 마련
대중 경제의존도 높은 EU 동맹 참여는 미지수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워싱턴=AFP 연합뉴스·베이징=AP 뉴시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워싱턴=AFP 연합뉴스·베이징=AP 뉴시스

미국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탄압 문제를 공통분모로 동맹국들과 ‘대중(對中) 연합 전선’을 형성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반중(反中) 경제동맹’ 구축에 나섰다. 중국의 대외 경제협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그와 유사한 ‘서방식 일대일로’로 중국의 경제력 팽창을 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구촌이 사실상 단일한 경제 공동체를 이룬 상황에서 특정 목적을 위한 ‘경제동맹’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일대일로와) 유사한 이니셔티브를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끌어내야 한다”면서 ‘인프라 계획’을 제안했다. 전날 취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중국과의 결전을 예고한 가운데 나온 제안이다. 정치동맹에 기반한 경제동맹을 대중 전략의 핵심 무기로 삼겠다는 복심이 드러난 셈이다.

일대일로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가로지르며 중국과 주변국의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중국의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신(新) 실크로드 전략을 말한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시작해 현재 100여개국이 참여하기로 한 상태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방식 일대일로에 비유한 데 비춰볼 때 인프라 계획 또한 서방 동맹이 합세한 공격적인 해외 투자로 ‘대외 경제력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에 목표를 둘 전망이다. 미 의회도 꾸준히 일대일로 견제를 요구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시절부터 관세 폭탄과 경제 제재를 주고받은 미중 간 무역 갈등도 한층 첨예해지게 됐다.

하지만 현재로선 미국보다 중국이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이는 양상이다. 마치 한 수 앞을 내다본 듯, 중국은 27일 이란과 향후 25년간 정치ㆍ경제ㆍ무역 분야 협력을 보장하는 장기 협정을 체결했다. 이란은 “일대일로 사업에서 이란의 역할을 키우는 게 이번 협정의 주요 내용”이라며 적극적 동참 의지까지 내비쳤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ㆍ5세대(5G) 이동통신 인프라에 투자하고 이란은 중국에 원유와 천연가스를 싼 값에 공급하는 방안이 담겼을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등과 관련해 미국에 함께 맞설 우군이 필요한 이란에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거래다.

특히 중국은 이번 협정으로 중동 일대 교두보를 마련하는 결실을 거머쥐었다. 경제 성장에 필요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도 확보했다. 덕분에 일대일로도 한층 추진력을 얻게 됐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중반까지 일대일로와 연계해 추진하는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 인프라 프로젝트는 2,600개가 넘고 금액은 3조7,000억달러(4,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곧 미국이 일대일로에 맞서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은 일대일로를 포기하는 대가로 100여개국에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고 납득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준비 중인 3조달러(3,400조원) 규모 ‘인프라 부양안’에도 중국 견제를 목표로 최근 중국이 강세인 인공지능, 반도체, 5G 이동통신 등 미래 기술 분야에 대한 수천억달러 투자 방안이 담길 예정인데, 이미 공화당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서방 동맹국들이 미국의 계획에 적극 동조할지도 미지수다. 중국은 미국의 핵심 우방인 유럽연합(EU)의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중국과 EU의 교역량은 5,860억유로(782조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미국(5,550억유로)을 제쳤다. 지난해 12월 양측은 포괄적 투자협정도 맺었다. 조지 W 부시 국무부에서 일했던 토머스 크리스텐슨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오늘날 세계는 완전하게 분리된 경제 블록으로 나눌 수 없다”며 “서방 동맹국 대부분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 완전히 적대적인 정책을 채택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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