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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을 시새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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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일찍 얼굴을 내민 작은 꽃잎들이 바람에 파르르 떤다. 사람들도 미처 겨울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데, 매화꽃, 벚꽃, 또 철없이 나온 이름 모를 꽃들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이른 봄, 이렇게 꽃이 필 무렵에 찾아오는 추위가 ‘꽃샘추위’다. 봄에 잎이 나올 무렵의 추위라고 ‘잎샘추위’라고도 한다.
‘꽃샘추위, 잎샘추위’를 풀어보면, 꽃이 피고 잎이 나는 것을 샘내는 추위라는 뜻이다. ‘함박꽃은 꽃샘추위의 시샘을 이겨 내고 활짝 피었다.’와 같이, 추위가 꽃이 피는 것을 샘낸다니 참 인간적이지 않은가? 추위 표현 중에 ‘손돌이추위’가 있다. 음력 10월 20일 무렵의 심한 추위라는 손돌이추위는 바람이 매섭고 추운 것이 고려 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사공 손돌이의 원한이라는 표현이다. 즉 ‘손돌이로 인한 추위’란 말이다. 11월 입시 때면 어김없이 온다는 ‘입시 추위’도 있다. 안 그래도 추울 어린 학생들을 더욱 움츠리게 하니 참 매정한 추위다. 이 말은 ‘입시가 있을 무렵’이란 시기를 드러낸다.
그런데 ‘꽃샘추위, 잎샘추위’란 말에서는 계절이 주인공이다. 음력 2월, 겨울의 끝 달을 ‘시샘달’이라 하는 것과 같다. 과연 계절이 자연의 섭리를 시새움할까? ‘시새움’이란 남의 처지나 물건을 탐내는 마음이다. 시새움은 준말인 샘, 시샘을 비롯하여 투기, 질투 등 비슷한말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언을 보여준다. 강원도의 ‘개살’, 함경남도의 ‘개삼, 우매’, 제주의 ‘게옴, 세’, 평안도의 ‘게증, 안쌀질, 끄넘’, 경기도와 충청도의 ‘샴’, 경상북도의 ‘시새, 히’와 경상남도의 ‘애살’ 등이 사전에 올라 있다. 방언이란 그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지역민에게 쓰인 말이다. 시새움의 방언이 전국에 있다는 것은 바로 이 말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에 해당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계절이 또는 추위가 샘을 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로 의인화된 표현인 것이다.
겨울은 한 번도 호락호락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봄이 오려면 며칠을 끙끙 앓는 것 같다. 가장 화사한 벚꽃이 늘 봄맞이의 희생양과 같았는데, 오늘 보니 잘못 알았다. 자그마한 몸으로 물색없이 나선 것이 아니라, 딱 이맘때 뽀얀 얼굴로 시샘을 불러 겨울의 마지막 흔적을 밀어내는 일을 맡은 것은 아닌지? 떨어지는 꽃잎은 자신이 봄의 전령이자 겨울 눈의 잔상임을 알리며 스러지고, 사람들은 올해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또 감탄사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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