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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고증·중국색 누적... '조선구마사' 폐지로 본 K드라마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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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역사 왜곡과 중국식 소품 사용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결국 폐지됐다. 판타지 사극이 역사 왜곡 논란으로 조기 종방하기는 방송사 초유의 일이다. 그간 여러 사극에서 반복된 부실 고증이 곪아 터져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선구마사'의 제작 중단은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우리 고대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계략)'으로 국내 반중 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비롯됐다. 본격 '소비자 불매 운동'까지 이어지자 중국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와 시대극 제작자들은 방송을 앞두고 바싹 긴장하는 분위기다.
SBS는 26일 "지상파 방송사로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 등 해외에서 온라인 서비스도 모두 중단된다. SBS는 지난 24일 문제가 된 장면을 모두 삭제하고, 내용 검수를 위해 내주 예정된 방송을 결방한다고 밝혔으나 그 이후에도 악화한 여론이 돌아서지 않고 광고주들의 잇따른 제작 지원 철회로 제작에 발목이 잡히자 폐지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 중국식 월병 접대? 역사 왜곡 '직격탄'
'조선구마사'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은 지난 22일 첫 방송부터 시작됐다. ①태종(감우성)이 아버지인 태조의 환영을 보고 백성을 무참히 학살하고 ②조선의 왕족인 충녕대군(장동윤)이 기생집에서 서역에서 온 구마사제(달시 파켓)에게 월병과 피단(삭힌 오리알) 등 중국식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내용상 역사 속 실존 인물을 굳이 가져와야 할 당위성이 없는데, 판타지를 빌미로 무리하게 연출을 해 조선의 정통성을 부정한 꼴로 비쳤기 때문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조선 좀비를 소재로 한 '킹덤'은 조선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극에 끌어오지 않았고, 좀비가 출연한 배경을 왕권과 신권의 대립 등 정치적 혼란 속에 등장한 산물로 풀어 반감을 지웠다"며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조선 건국 초기 정치적 혼란을 이미 지난 태종 시대에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그 혼란의 배경도 딱히 드러내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시대를 지목해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풀어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몽'도 '중국식 의상' 논란... 누적된 '문화 왜곡'
역사 왜곡 논란 불길은 '조선구마사'의 중국식 소품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무녀 무화(정혜성)를 비롯한 극 중 일부 인물의 의상과 군사들이 사용하는 검이 중국풍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주몽' 등 그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중국식 의상 논란이 반복되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시청자들의 불만이 쌓여왔다"며 "이번 '조선구마사'에서 또 중국식 소품이 문제가 되면서 문화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져 화를 부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OTT를 통해 콘텐츠가 해외로 쉬 유통되는 환경에서 '조선구마사' 폐지를 계기로 사극의 고질적 문제를 바로잡아 문화적 고유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신강림' '빈센조'의 중국 PPL... 반중 정서로 '차이나머니' 역풍
'조선구마사'의 중국색 논란이 커진 데는 최근 tvN 드라마 '여신강림'과 '빈센조'에서 잇따라 국내 소비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중국 제품(인스턴트 훠궈와 비빔밥)을 PPL(간접광고)로 사용해 구설에 오른 배경과 관련이 깊다. 중국 자본 즉 '차이나 머니'가 국내에 투입되면서 시장 잠식뿐 아니라 콘텐츠에 중국색이 두드러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미니시리즈 기준 회당 평균 제작비는 요즘 6억 원으로, 2010년대 초반 2억 원에 비해 3배가 늘었다. 중국과 일본의 '공식' 한류 시장이 꽁꽁 언 데다 코로나19로 제작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차이나머니를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게 제작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국내 유명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는 "드라마 불매 운동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라 중국 PPL을 되도록 빼려 한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잠중록'과 '설강화'에도 불똥 '전전긍긍'
대중의 반중 정서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중국 동명 웹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잠중록'과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시대극 '설강화' 제작진엔 비상이 걸렸다.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설강화'는 운동권 학생인 남자주인공이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는 설정을 한 것으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JTBC는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 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며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등은 담고 있는 내용과 다를뿐더러 제작 의도와도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조선구마사' 역사 왜곡 논란의 불똥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었다. 중국 웹툰 원작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 표현해 물의를 빚은 '철인왕후'에 출연한 일부 배우를 모델로 쓴 업체들은 소비자 항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철인왕후'는 '조선구마사'를 쓴 박계옥 작가의 전작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는 지난해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로 인한 반일 불매운동을 주도했고, 이번 '조선구마사' 관련 보이콧도 그 일환"이라며 "하지만, 소비자 불매운동이 자칫 마녀사냥으로 번질 수 있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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