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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은 표현의 자유' 용납 않는 MZ세대...광고주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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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한 편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24일 방영을 시작한 SBS '조선구마사' 이야기입니다.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에게 영혼을 지배당한 '생시(살아 있는 시체)'와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가 역사 왜곡 논란을 빚으며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판타지 사극'을 표방한다지만 잔혹한 전개 속에서 허구적 캐릭터가 아닌 역사적 실존 인물을 내세워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죠. 더욱이 중국이 한복·김치 등을 자국 문화라고 우기는 '문화 동북공정'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가는 중에 중국식 소품까지 등장해 해당 장면이 중국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이 처음은 아니지만 '조선구마사'에 불어닥친 역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거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영 중단을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광고주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이전 퓨전 사극의 역사 왜곡 논란 사례가 제작진 사과로 일단락됐던 것과 달리 급기야 방영 2회 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사실 '조선구마사'의 역사 왜곡 논란이 이처럼 일파만파 커진 것은 최근 여론의 흐름을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여론 형성이 MZ세대(198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2000년대 초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를 중심으로 디지털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죠.
불공정·불합리·차별 등에 민감한 이들은 선을 넘어선 콘텐츠에 대해서도 용납하지 않는 성향이 강합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기후 변화든 인종적 정의든, 양성 평등 문제든 정치 문제에 대한 관여도가 높은 게 Z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는데요.
'조선구마사' 논란과 관련한 전문가 분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Z세대 등으로 불리는 젊은 세대는 문제 의식이 있어도 이를 원하는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던 기성 세대와는 다르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확산된 '노 재팬(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본 의류·화장품 브랜드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 것을 예로 들어 "바로잡아야 할 대상에 대해 즉각 행동에 나서고 효과가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동하는 이들 세대는 이를 통한 가시적 성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며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조선구마사' 논란이 한창이던 와중에 코미디언 박나래가 지나친 성적 발언과 행동 묘사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웹예능 '헤이나래'에서 하차하고, 프로그램이 폐지 결정되는 일도 있었죠.
이처럼 온라인에 퍼진 비난 여론 때문에 콘텐츠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변화가 생기는 일은 최근 미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미디어기업 컨데나스트는 18일(현지시간) 알렉시 매캐먼드(27) '틴 보그' 편집장 내정자가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잡지 역사상 세 번째 흑인 편집장이 된 매캐먼드가 10년 전 트위터에 올린 아시아인 조롱 트윗글과 관련한 논란이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ABC방송의 인기 리얼리티쇼 '베철러'도 비난 여론 때문에 이달 초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 온 진행자 크리스 해리슨이 물러난 건데요. 해리슨은 지난달 출연자 레이철 커크코넬의 과거 인종차별적 행태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커크코넬은 노예제가 합법이던 미국 남북전쟁 이전 시기를 의미하는 '앤터벨룸(Antebellum)'을 주제로 한 파티에 참석한 사실이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행적으로 드러나 비난받았습니다.
특히 MZ세대는 여론뿐 아니라 불매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광고주까지 움직이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영국 온라인 출판사 비즈니스비코즈는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 자료를 인용해 "Z세대 소비자의 75%가 광고 캠페인 전반에 걸쳐 인종과 성 차별을 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 의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둘러싸인 채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사회 문제에 민감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성향도 강하다"는 설명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셸 로저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는 "젊은 세대는 요동치는 경제 속에 상위 1%가 부의 대부분을 소유한 사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며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신용카드 관련 정보분석업체 컴패어카즈는 '불매 운동 참여 비중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작아진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Z세대(51%)와 밀레니얼 세대(52%)는 절반가량이 1개 이상의 회사를 상대로 불매 운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X세대(37%)·베이비붐 세대(22%)·침묵세대(1928~1945년생·16%) 등 고연령대로 갈수록 불매 운동에 참여한다는 응답 비율이 낮아졌습니다.
미국 '틴 보그'의 경우 매캐먼드 편집장 내정자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자 울타뷰티와 버츠비 등 '틴 보그'의 주요 광고주들이 광고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드라마 '조선구마사' 논란이 사상 초유의 폐지 결정으로까지 이어진 것도 모든 광고주가 등을 돌린 영향이 큽니다. 심상치 않은 비난 여론 확산 분위기에 놀란 광고주들은 재빨리 '손절'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제작 지원사 중 한 곳이었던 쌍방울은 제작 지원 철회 결정과 함께 자사 홈페이지에 사과문까지 게재했습니다. 드라마 첫회 방영 직후부터 이 회사에는 이메일과 전화, 심지어 대표의 SNS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통해 소비자 항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드라마가 2회 방영되는 동안 쏟아진 항의 이메일만도 50통이 넘었다고 하네요.
일부에서는 이 같은 MZ세대의 행동력이 과도한 '캔슬(cancel) 컬처(철회 문화)' 또는 현대적 형식의 새로운 배척이 아니냐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확실한 것은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제작사뿐 아니라 이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기업도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드라마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불찰에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한다. 앞으로 유사한 경우가 있으면 내용을 세심히 살펴보고 지원 결정을 하겠다"는 쌍방울 관계자의 말이 비장하게까지 들렸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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