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댓글에… 대법 "모욕적이지만 위법은 아냐"

입력
2021.03.25 11:20
수정
2021.03.25 14:16
구독

기업 일방 옹호 기사에 "기레기 아니냐"
1·2심 "'쓰레기' 표현은 전형적 경멸 표현"
대법 "사실 근거로 밝힌 의견이면 죄 안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향해 온라인 댓글로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표현을 썼더라도, 객관적으로 타당한 사실을 전제로 의견을 밝힌 행위라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은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6년 2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자동차 관련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내용의 댓글을 게시해 해당 기자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당시 국내 자동차기업의 전동식 조향장치(MDPS) 결함을 비판하는 내용의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이 보도된 이후, 해당 기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정반대 취지의 다른 매체 기사에 이 같은 댓글을 달았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것이라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은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이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기레기' 표현이 모욕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동식 조향장치의 안전성 논란이 많았던 가운데, 해당 기사는 제목에서 해당 장치를 옹호하거나 장치의 일반적 장점을 밝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기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레기' 표현에 대해서도 "기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한 것이며,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판결에 대해 "특정 사안과 관련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작성된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 글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현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